아름다운사회

봄의 평화, 평화의 봄

봄의 평화, 평화의 봄

by 강판권 교수 2018.05.07

봄은 평화다. 나무와 풀이 아름다운 것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봄의 식물들이 피운 꽃을 즐기면서도 꽃가루를 무척 싫어한다. 꽃가루는 식물이 후손을 만드는데 절실하다. 그러나 인간은 식물에게 절실한 꽃가루를 피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멸한다. 그래서 특정 나무를 가로수를 심을 때 수나무만 심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전국에 날아다니는 꽃가루 중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는 소나무 꽃가루는 수나무다.
평화의 봄은 인간이 만들어야만 한다. 식물은 인간에게 평화를 주지만 인간은 식물의 평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식물의 꽃가루는 평화의 전령이지만 인간은 평화의 전령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식물이 만든 봄의 평화를 평화의 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물 자체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식물을 포함한 실존 자체를 수용하는 자세는 삶은 물론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역사의 사례 중에서 조선의 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치욕을 당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에게 망한 명나라를 숭배한 대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 허상에 사로잡혀 실체를 보지 못한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봄철 꽃가루를 아주 많이 만드는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소나무가 꽃가루를 많이 만드는 것은 바람으로 수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철 소나무의 꽃가루, 즉 송화(松花) 가루는 사람들이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소나무는 우리 역사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나무는 조선시대 병선을 비롯해 위로는 왕이 거처하는 궁궐에서 아래로 백성이 사는 집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목재를 제공했다. 지금도 우리나라 산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나무의 꽃가루에 눈이 막혀 소나무의 역할과 가치를 잊어버린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항심(恒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소나무를 좋아하면서도 소나무의 꽃가루를 싫어하는 것은 항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만남은 불가능하다. 눈앞에 실체가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사랑하는 대상도 소나무이고, 꽃을 만드는 것도 소나무인데도 꽃과 소나무를 분리하는 마음은 불행의 씨앗을 잉태한다. 식물은 꽃가루를 날려 평화의 씨앗을 잉태하지만 인간은 꽃가루를 혐오하면서 불행의 씨앗을 만든다.
식물들이 만드는 봄의 평화는 아름답다. 누구나 공평하게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입맛대로 식물을 차별한다. 식물을 차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존중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꽃가루는 생명체이라는 점에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존경받아야 할 대상을 경멸하는 순간 평화는 위기를 맞는다. 소나무가 꽃가루를 날리지 않는 순간, 이 땅의 평화는 위기를 맞는다. 사람들이 봄철마다 발생하는 송화 가루를 평화의 천사처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한반도에는 결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평화의 봄은 결국 봄의 평화와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