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그 많은 날들 어떻게 챙기나

그 많은 날들 어떻게 챙기나

by 이규섭 시인 2018.05.04

오월의 첫 날, 아침운동으로 연다. 습관처럼 미세먼지를 체크하니 보통 수준이다. 근린공원이 가까워지자 에어로빅 반주가 경쾌하게 들린다. 여섯시부터 시작이니 이른 시각부터 부지런을 피었을 게 뻔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중년층 이상이 대부분이지만 활력이 뿜뿜 솟는다.
앞 다퉈 피던 봄꽃이 진 자리에 오월의 초록 향연이 싱그럽다. 덩치 큰 느티나무는 초록 우산을 펼친 듯 어린이놀이터에 초록빛 꿈을 펼쳐 놓는다. 볼 때마다 시골 큰댁 들머리의 늙은 느티나무가 떠올라 향수를 자극한다. 느티나무 옆집 후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았으나 초록 꿈을 펼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꿈을 옮겨 애잔하다. 몸은 늙어도 추억은 늙지 않고 세월을 비껴간다.
책상 앞에 걸어놓은 오월 달력을 쳐다보니 빨간 날 일곱 개에 기념일이 못자리처럼 빼곡하다. 근로자의 날(1일)을 시작으로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유권자의 날(10일), 스승의 날(15일), 5.18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발명의 날(19일), 세계인의 날(20일), 석가탄신일(22일), 부부의 날과 성년의 날이 겹친 21일, 방제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 등 줄줄이 사탕이다. 그 많은 날들을 누가 다 챙길 것인가.
오월의 가장은 허리가 휜다. 부모에겐 용돈을 드리거나 외식으로 기념일을 넘길 수 있지만 어린 자녀에게 장난감을 선물하려면 가격이 만만찮다. 손자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사줘야 할지 걱정이다. 어렸을 적 놀이라는 게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자치기, 나무로 깎아 만든 팽이가 고작이었다. 날 선 스케이트는 이루지 못할 소망이었다. 요즘은 장난감 완구 종류도 다양하고 이름조차 생소하여 선택에 고민이 따른다.
손자의 장난감 취향도 나이와 함께 자란다. 어쩌다 장난감 매장에 들리면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유행하는 장난감을 골라 깜짝 놀란다. 다섯 살 무렵엔 터닝 메카드에 빠져 신제품을 여러 개 샀다. 헬로 카봇으로 변신 놀이에 흥미를 보이더니 여섯 살 무렵엔 팽이놀이에 팽팽 빠져든다. 팽이는 만화 ‘베이블레이드 시즌2’ 영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상술의 요술을 부린다. 3가지 부품이 합쳐진 팽이끼리 대결하여 상대방 팽이를 넘어뜨린다. 할아버지에게도 도전장을 내민다. 한때는 키즈 카페를 곧잘 들리더니 이제는 시들해졌다. 점프하기와 비행기놀이 열차 타기가 유치해지자 레고 카페로 눈을 돌린다. 작은 손으로 그림을 보고 부품을 찾아 조립하는 모습이 신통방통이다.
“장난감 사는 데 보태라”며 자식에게 봉투를 전하기보단 손자와 함께 나들이하며 좋아하는 장난감을 직접 사주고 싶은 게 할아버지 마음이다. 여윳돈은 없더라도 손자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식스포켓시대’의 신세대 할아버지이고 싶은 거다. 저출산, 고령화를 우리보다 일찍 겪은 일본은 한 아이에게 부모, 친조부모, 외조부모 등 여섯 명이 지갑을 연다는 ‘식스 포켓(six pocket)’ 신조어를 유행시켰다. 최근에는 고모, 이모, 삼촌까지 가세하며 ‘세븐 포켓’, ‘에잇 포켓’ ‘텐 포켓’까지 나왔다. 마냥 좋아해야 할 세태의 반영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