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풀어도 헝클어짐 없는 이유
금기 풀어도 헝클어짐 없는 이유
by 이규섭 시인 2018.04.27
네덜란드는 금기가 없는 나라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와 낙태를 허용하고, 성매매와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가 동성애를 인정한 1811년은 우리나라 양반 출신 홍경래가 백성의 평등을 외치며 반란을 일으킨 200여 년 전과 동시대다. 소수라도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금기를 풀어놓고도 헝클어짐 없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행을 준비하며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김선영 씨가 쓴 책 ‘물론이죠, 여기는 네덜란드입니다’(애미엠스토리/2017년)에서 해답을 얻었다. ‘자유와 평등, 관용이 마치 햇빛처럼 또 공기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에 공감이 간다. 누군가가 거리에서 침을 뱉는다면 ‘울컥’하다가도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뭐’하고 ‘애써 이해하려고 하는 게’ 상식이라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런 생각조차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분석했다.
암스테르담 거리를 걷다 보면 나뭇잎이 그려졌거나 칙칙한 카페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곳이다. 마리화나 허용 후 흡연율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한다. 미국인의 마리화나 흡연율이 14%인데 반해 네덜란드인은 5%다. 무조건 금지하기보다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 뒤 개인은 더 행복해졌고 사회 경쟁력은 향상됐다고 한다.
네덜란드 여행의 출발점은 담 광장이다. 왕궁과 교회, 백화점이 몰려있고 중앙역과 운하투어 선착장이 가깝다. 광장엔 관광객과 해바라기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광장의 왕궁은 1655년부터 1808년까지 시청사로 쓰였다. 프랑스 점령기 때 나폴레옹의 동생이 왕궁으로 사용하던 것을 네덜란드 왕실에서 이어받은 질곡의 사연이 담겼다. 네덜란드 왕은 헤이그에 있는 왕궁을 더 선호하여 이곳에선 공식적인 의전행사와 중요한 회담만 열린다고 한다. 1979년 이후 전시회 장소로 일반에 개방됐다.
왕궁 맞은 켠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기리는 하얀 대리석 석주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부근 반 고흐 미술관에 들러 ‘해바라기’를 보려 했으나 휴관일이다.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앞에 설치된 ‘아이엠스테르담(Iamsterdam)’ 광장도 빠뜨리면 아쉬운 관광 코스. 조형물 I(아이)자(字)가 어른 키 두 배 높이다. 담 광장보다 젊은 층이 넘실댄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에이셀 호수의 저지대를 간척해 조성했다. 400년 역사를 품은 도시의 대동맥 구실을 한다. 1시간 걸리는 버스형 유람선에 올랐다. 중앙역과 니콜라스 교회, 해운조합건물이 차례로 스쳐간다. 렘브란트하우스, 시청, 오페라 극장, 부산 영도다리처럼 들었다 놨다 하는 목조다리도 보인다. 다리 여섯 개의 원형 수로가 일직선으로 보이는 지점에선 셔터를 잽싸게 누른다.
17세기 풍 맞배지붕의 ‘파사드’ 건물들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도열해 중세기 세트장 같다. 방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 수상 가옥도 드문드문 보인다. 운하의 다리나 둑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손을 흔드는 젊은이들에게 활기가 넘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조화롭고 절제된 시민정신이 참 부럽다.
암스테르담 거리를 걷다 보면 나뭇잎이 그려졌거나 칙칙한 카페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곳이다. 마리화나 허용 후 흡연율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한다. 미국인의 마리화나 흡연율이 14%인데 반해 네덜란드인은 5%다. 무조건 금지하기보다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 뒤 개인은 더 행복해졌고 사회 경쟁력은 향상됐다고 한다.
네덜란드 여행의 출발점은 담 광장이다. 왕궁과 교회, 백화점이 몰려있고 중앙역과 운하투어 선착장이 가깝다. 광장엔 관광객과 해바라기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광장의 왕궁은 1655년부터 1808년까지 시청사로 쓰였다. 프랑스 점령기 때 나폴레옹의 동생이 왕궁으로 사용하던 것을 네덜란드 왕실에서 이어받은 질곡의 사연이 담겼다. 네덜란드 왕은 헤이그에 있는 왕궁을 더 선호하여 이곳에선 공식적인 의전행사와 중요한 회담만 열린다고 한다. 1979년 이후 전시회 장소로 일반에 개방됐다.
왕궁 맞은 켠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기리는 하얀 대리석 석주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부근 반 고흐 미술관에 들러 ‘해바라기’를 보려 했으나 휴관일이다.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앞에 설치된 ‘아이엠스테르담(Iamsterdam)’ 광장도 빠뜨리면 아쉬운 관광 코스. 조형물 I(아이)자(字)가 어른 키 두 배 높이다. 담 광장보다 젊은 층이 넘실댄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에이셀 호수의 저지대를 간척해 조성했다. 400년 역사를 품은 도시의 대동맥 구실을 한다. 1시간 걸리는 버스형 유람선에 올랐다. 중앙역과 니콜라스 교회, 해운조합건물이 차례로 스쳐간다. 렘브란트하우스, 시청, 오페라 극장, 부산 영도다리처럼 들었다 놨다 하는 목조다리도 보인다. 다리 여섯 개의 원형 수로가 일직선으로 보이는 지점에선 셔터를 잽싸게 누른다.
17세기 풍 맞배지붕의 ‘파사드’ 건물들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편에 도열해 중세기 세트장 같다. 방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 수상 가옥도 드문드문 보인다. 운하의 다리나 둑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손을 흔드는 젊은이들에게 활기가 넘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조화롭고 절제된 시민정신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