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쑥쑥 자라는 쑥, 떡

쑥쑥 자라는 쑥, 떡

by 강판권 교수 2018.04.16

국화과의 다년생 쑥은 아주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봄철에 쑥을 뜯어 만든 떡은 까칠한 입맛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그러나 요즘은 토양 오염과 황사 등으로 깨끗한 쑥을 뜯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직접 들이나 산에서 뜯은 쑥으로 만든 떡을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대신 재배 쑥으로 만든 떡이 식탁에 오른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근처 산에서 쑥을 뜯었다. 쑥을 뜯으면서 어린 시절 자주 쑥을 뜯었던 추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어린 시절 바구니를 들고 동네 어귀에서 쑥을 뜯었던 것은 여동생과 누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봄볕을 받으면서 쑥을 뜯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봄볕은 사람의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쉬 지치게 만들 뿐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온 후의 노동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봄볕을 쬐면서 쑥을 뜯는 시간은 무척 즐겁다. 어린 시절과 지금 쑥을 뜯는 행위는 같지만 마음이 다른 것은 자신이 원해서 하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쉬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어렵다.
쑥이 자라는 곳은 척박하다. 쑥은 나무도 풀도 없는 곳에서 잘 자란다. 나무도 풀도 없으면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불이 난 후 가장 먼저 태어나는 생명도 쑥이다. 쑥이 올라와 지면을 장악하면 다른 식물들이 쉽게 똬리를 틀지 못한다. 종종 산길을 가다 보면 쑥대밭을 만난다. 쑥이 쑥쑥 자라서 사람 키만큼 자라면 밭은 황무지처럼 변한다.
쑥은 흔하고 흔한 풀이지만 중국의 고전인『시경』에 등장할 만큼 일찍부터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시경』에서 쑥을 의미하는 한자는 아(莪)와 호(蒿)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쑥의 한자는 애(艾)와 봉(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쑥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삼국유사』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영애(靈艾)다. 영애는 보통 ‘신령스러운 쑥’으로 번역하지만 다른 식물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고전에 등장하는 식물명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언어의 효율성 때문에 같은 한자를 다양한 식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에 등장하는 식물명을 지금의 식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단군신화 속의 영애를 기존의 번역대로 쑥이라고 한다면, 쑥은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식물이다. 단군신화는 쑥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것을 암시한다. 식물의 역사성은 식물의 인문학적인 이해를 전제한다.
쑥떡은 많은 공을 들여야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쑥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양의 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방앗간에서 만드는 시간도 적지 않다. 쑥떡의 진한 향기는 봄철에 까칠해진 마음을 기름지게 만들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쑥을 아무렇지도 않은 채 발로 밟고 지나간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신화에 등장하는 쑥인데도 쑥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쑥처럼 풀 한포기마다 인문의 정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