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수선화

수선화

by 권영상 작가 2018.03.22

봄비 온다. 봄비치고 적잖이 온다. 비는 새벽부터 내렸다. 들판을 두드리고 마당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깨었다. 잠결인데도 반가웠다. 이미 휴대폰 날씨 정보를 통해 새벽 3시부터 내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역시 봄비 소리는 좋다. 우물가에 묻어둔 수선화 때문이다.
지난해 봄, 양재동 꽃시장에서 돌아온 아내의 손에 수선화가 들려있었다. 비닐포트에 심어진 12뿌리 한 바구니였다. 베란다 고운 볕에 내놓고 겨울을 향기롭게 보냈다. 초록 잎과 하양 꽃잎과 노랑 부화관을 볼 때면 저절로 마음이 청결해졌다.
한 열흘 잘 피던 꽃이 지자, 아내가 안성으로 내려가는 내 차에 수선화를 실었다.
“거기 어디다 심어봐. 아깝잖아.”
수선화에 대해 별 아는 게 없는 나는 별생각 없이 안성 우물가 단풍나무 아래에 심어두었다. 그냥 되는 대로 묻어두었다는 게 옳겠다. 꽃도 말라버리고, 줄기도 잎도 시들어가는 걸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한때 청결하게 피던 그 꽃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여 간격이랄 것도, 깊이랄 것도 없이 흙을 헤쳐 묻고는 그만 잊고 말았다.
그러던 것을 요 얼마 전 알뿌리 화초 관리법에 대한 글을 보며 수선화를 다시 알게 되었다. 실은 토란씨 때문이다. 토란은 지난해에 키운 작물 중에 놀랄 정도로 잘 커준 작물인데 씨앗 보관에 문제가 생겼다. 온통 곰팡이 습격을 받고 말았다. 토란만이 아니고 칸나도 마찬가지였다. 알뿌리 관리에 너무 무지했다.
겨울잠을 자는 알뿌리 화초들, 이를테면 글라디올러스나 달리아, 아마릴리스, 칸나 등은 뿌리를 캔 뒤 2~3일간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야 한다. 그런 뒤 양파 자루에 담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매달아 두는 게 기본이라는 거다. 그때 안 것이 여름잠을 잔다는 알뿌리 화초였다. 알뿌리가 겨울잠을 잔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여름잠을 잔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백합, 튤립, 샤프란, 히아신스, 프리지아, 그리고 수선화 등이 그들이었다. 겨울잠을 자는 알뿌리들이 추위에 약하다면 여름잠을 자는 알뿌리들은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하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단풍나무 아래에 묻어둔 수선화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수선화는 기온이 점점 오르고 여름장마가 다가올 징후를 느끼면 더위를 못 견뎌 여름 휴면에 들어간다는 거다. 나는 감자며 토란 칸나, 홍당무가 크는 밭머리에 수선화가 더위를 피해 잠자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한 해를 지내온 셈이다.
내가 한때 즐겨 읽었던 미국 동화작가 타샤 투더의 <타샤의 정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수선화 없는 생활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그녀는 그만치 수선화를 사랑했다. 그 넓은 뜰에 가득히 수선화를 심어놓고 그 정갈한 향기를 즐겼다.
나 역시 추사의 ‘수선화부’를 책상머리 벽에 30년이 넘도록 걸어두고 아끼는 중이다. 마치 게가 기어가는 듯한 수선화 두 뿌리와 추사가 인용한 청나라 시인 호경의 시는 너무나 호흡이 잘 맞는다. 그러나 나는 수선화부는 사랑했지만 수선화에 대해 너무 몰랐다.
봄비를 맞으며 수선화를 만나러 우물가에 갔다. 단풍나무 밑을 살폈다. 3월에 꽃 핀다는 말이 맞게 파란 새움이 흙을 밀고 나온다. 나는 꽃을 본 것처럼 벌써 마음이 들뜬다. 별 아는 게 없어 저지른 사람의 불찰이 너무도 아름다운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오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