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가는 길에 일실십득(一失十得)
봄으로 가는 길에 일실십득(一失十得)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8.03.15
춥고 긴 겨울이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발뺌하듯이 가버리고 이제 봄빛이 완연하다.
그냥 그대로 계속될 것 같아도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삶의 이치라는 것, 정말이지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고 경이롭다.
그러니 한 발짝 물러나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면 그 무엇도, 어떤 상황에도 여유를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이것 하나만 챙기며 살아도 삶의 즐거움은 배가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설날 며칠 전의 일이다. 평소 급한 성격이 나도 모르게 나오곤 하는 터라 아침을 챙기다 서두르는 마음에 식탁의자에 발가락을 부딪혔다. 순간 큰 통증이 몰려오며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전 같으면 성질을 부리며 이런저런 증상을 보였을 것 같은데 왠지 침착한 내가 낯설지 그지없었다. 삶의 내공이 언제 생겼을까.
어쨌거나 병원에 가서 X-ray를 찍고 상태를 살펴보니 통증은 여전했지만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통증보다 더 답답한 것은 평소 빠른 걸음으로 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느리게 걷다 보니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제 거의 다 나았지만 그 ‘다른 세상’을 정리해 보니 사자성어로 바로 ‘일실십득(一失十得)’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지만.
첫 번째, 걸음이 느려지니 평소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그동안 그냥 지나친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두 번째, 급한 성격대로 사는 게 아닌 ‘급한 성격’의 일상에 깨어있게 되어 잠깐의 쉼이 있는 습관이 생겨났다. 열 가지 중에 이것이 최고인 듯싶다.
세 번째, 약속에 미리 가는 습관이 생겨났다. 느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지만 여유 있는 삶이 이토록 편안한 것임을 왜 진즉에 몰랐을까.
네 번째, 뛰어가서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대신 그런 사람들을 즐겁게 지켜본다(지켜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사람이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요행히 탔다 한들 뭐가 있을까.
다섯 번째, 걷기 명상이 가능하다. 그 명상을 통해 일상에 깨어있는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섯 번째, 느림의 미학을 그대로 즐기고 있다. 느릿느릿 걷다 보니 다른 바람, 다른 기운이 느껴져 참 좋다.
일곱 번째, 느린 걸음 속에서 삶의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서두르면 아이디어,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 어려운 것임을 확인한다.
여덟 번째, 발가락이 내 것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내 몸은 무엇 하나도 다 연결된 유기체라는 것, 거기서 나아가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을 진하게 마주한다.
아홉 번째, 불편함이 있지만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절감한다. 잘 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열 번째, 마음챙김,순간챙김의 여유와 그 맛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고난이 축복이라더니 바로 그 자체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발가락 부상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새옹지마(塞翁之馬)’가 그대로 내 삶에 살아있었다.
거기에 일실십득(一失十得)까지.
쾌유를 빌어준 수많은 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그냥 그대로 계속될 것 같아도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삶의 이치라는 것, 정말이지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고 경이롭다.
그러니 한 발짝 물러나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면 그 무엇도, 어떤 상황에도 여유를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이것 하나만 챙기며 살아도 삶의 즐거움은 배가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설날 며칠 전의 일이다. 평소 급한 성격이 나도 모르게 나오곤 하는 터라 아침을 챙기다 서두르는 마음에 식탁의자에 발가락을 부딪혔다. 순간 큰 통증이 몰려오며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전 같으면 성질을 부리며 이런저런 증상을 보였을 것 같은데 왠지 침착한 내가 낯설지 그지없었다. 삶의 내공이 언제 생겼을까.
어쨌거나 병원에 가서 X-ray를 찍고 상태를 살펴보니 통증은 여전했지만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통증보다 더 답답한 것은 평소 빠른 걸음으로 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느릿느릿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느리게 걷다 보니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제 거의 다 나았지만 그 ‘다른 세상’을 정리해 보니 사자성어로 바로 ‘일실십득(一失十得)’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지만.
첫 번째, 걸음이 느려지니 평소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그동안 그냥 지나친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두 번째, 급한 성격대로 사는 게 아닌 ‘급한 성격’의 일상에 깨어있게 되어 잠깐의 쉼이 있는 습관이 생겨났다. 열 가지 중에 이것이 최고인 듯싶다.
세 번째, 약속에 미리 가는 습관이 생겨났다. 느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이지만 여유 있는 삶이 이토록 편안한 것임을 왜 진즉에 몰랐을까.
네 번째, 뛰어가서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대신 그런 사람들을 즐겁게 지켜본다(지켜볼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사람이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요행히 탔다 한들 뭐가 있을까.
다섯 번째, 걷기 명상이 가능하다. 그 명상을 통해 일상에 깨어있는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섯 번째, 느림의 미학을 그대로 즐기고 있다. 느릿느릿 걷다 보니 다른 바람, 다른 기운이 느껴져 참 좋다.
일곱 번째, 느린 걸음 속에서 삶의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서두르면 아이디어,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 어려운 것임을 확인한다.
여덟 번째, 발가락이 내 것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내 몸은 무엇 하나도 다 연결된 유기체라는 것, 거기서 나아가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을 진하게 마주한다.
아홉 번째, 불편함이 있지만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절감한다. 잘 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열 번째, 마음챙김,순간챙김의 여유와 그 맛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고난이 축복이라더니 바로 그 자체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발가락 부상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새옹지마(塞翁之馬)’가 그대로 내 삶에 살아있었다.
거기에 일실십득(一失十得)까지.
쾌유를 빌어준 수많은 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