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동백꽃
보길도 동백꽃
by 권영상 작가 2018.03.08
동백꽃이 그립다, 그 말을 할 때였다. 마침 내 말이 받아들여졌다.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보길도로 떠났다. 그 무렵, 직장에 탁구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거기 들어 있었다. 그들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나의 동백꽃 타령이 먹혀들었다.
‘보길도에 동백꽃을 보러가자!’ 결정은 그렇게 났다. 마침 우리 중에 그쪽 지리를 잘 아는 분이 있었다. 우리는 땅끝마을에서 윤선도 고가를 찾았고, 두륜산 대흥사 겨울 운치에 젖어 하룻밤을 산사 인근에서 자고 이튿날 여객선에 올랐다.
두 시간여를 달렸을까. 해무가 바다를 하얗게 뒤덮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배가 우리 배를 기습적으로 들이받는다 해도 속수무책일 만큼 바다 안개는 자옥했다. 배가 경적을 울리며 해무 속을 파고들었다. 말이 해무지 백색 야음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배는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바다는 깊어보였고, 조류는 빠른 속도로 굽이쳐 흘러갔다.
잠시 움직이던 배가 이번에는 종을 난타했다. 금속성 종소리가 해무를 뚫고 날아갔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해무가 배를 옭죄고 우리들 목덜미를 옭죄었다. 선장은 10여 분이 넘도록 연속적으로 종을 쳤다. 이 바다에서 누군가를 찾는 비상 신호음 같았다. 이윽고 해무를 뚫고 소형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배로 갈아탔다. 보길도에서 우리를 태우러 온 배였다. 보길도엔 이렇다 할 접안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실은 배가 빠른 속도로 해무를 뚫고 달렸다. 어느 쯤에서 꽉 막힌 안개가 열리면서 안개 사이로 금빛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이내 우리는 해무를 벗어났다. 저쪽 멀리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길도라고 했다. 꿈결처럼 나타난 섬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뱃길도 꿈결 같았다. 해무 속에서 벗어난 우리는 마치 사막에 추락한 것처럼 섬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여 남쪽 바다 한 섬에 당도했다.
우리 일행 일곱은 한 대밖에 없다는 섬 택시 안에 차곡차곡 기어들었다. 세연정을 향해 달렸다. 동백꽃은 거기 있었다. 물 위에도 동백, 물 밑에도 동백, 물가에도 동백, 꽃 지천이었다. 보길도는 동백섬이었다. 덜컥 봄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아! 탄성을 질렀다.
정신이 들면서 그 섬의 짭짤한 공기를, 그 섬의 푸른 봄빛을, 해무에 막 씻겨난 햇빛을, 그 섬의 억센 사투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길 위의 돌멩이로 발장난을 하며, 바윗돌에 걸터앉아 엉덩이 밑으로 올라오는 봄기운을 느끼며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도심을 떠나 남쪽 어느 꽃섬에 와 있다는 걸로 지친 나를 달래었다.
활처럼 휜 예송리바닷가의 활엽목들이며,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깃대섬이며 안장섬은 잘 보면 섬이라기보다 바다를 첨벙첨벙 걸어오는 공룡을 닮았다. 섬을 휘돌아 밤늦게 숙소에 돌아올 적에 그 집 담장 아래에서 툭, 동백꽃 지던 소리. 섬의 하루를 보내는 사이 내 귀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여는 정상의 청력으로 돌아왔다.
답답한 도회의 숲에서 우리가 그리워한 것은 먼 남쪽의 동백꽃도, 봄도, 섬도 아니었다. 멀리 벗어나고 싶은 탈출 욕망이었다. 문을 꼭 닫고 잠을 자는데도 툭, 툭, 꽃 떨어지는 소리에 그 밤은 잠을 설쳤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아득하다. 나의 한창 시절이던, 20년도 더 되는 세월 저쪽 편의 이야기다.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보길도로 떠났다. 그 무렵, 직장에 탁구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거기 들어 있었다. 그들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나의 동백꽃 타령이 먹혀들었다.
‘보길도에 동백꽃을 보러가자!’ 결정은 그렇게 났다. 마침 우리 중에 그쪽 지리를 잘 아는 분이 있었다. 우리는 땅끝마을에서 윤선도 고가를 찾았고, 두륜산 대흥사 겨울 운치에 젖어 하룻밤을 산사 인근에서 자고 이튿날 여객선에 올랐다.
두 시간여를 달렸을까. 해무가 바다를 하얗게 뒤덮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배가 우리 배를 기습적으로 들이받는다 해도 속수무책일 만큼 바다 안개는 자옥했다. 배가 경적을 울리며 해무 속을 파고들었다. 말이 해무지 백색 야음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배는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바다는 깊어보였고, 조류는 빠른 속도로 굽이쳐 흘러갔다.
잠시 움직이던 배가 이번에는 종을 난타했다. 금속성 종소리가 해무를 뚫고 날아갔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해무가 배를 옭죄고 우리들 목덜미를 옭죄었다. 선장은 10여 분이 넘도록 연속적으로 종을 쳤다. 이 바다에서 누군가를 찾는 비상 신호음 같았다. 이윽고 해무를 뚫고 소형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배로 갈아탔다. 보길도에서 우리를 태우러 온 배였다. 보길도엔 이렇다 할 접안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실은 배가 빠른 속도로 해무를 뚫고 달렸다. 어느 쯤에서 꽉 막힌 안개가 열리면서 안개 사이로 금빛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이내 우리는 해무를 벗어났다. 저쪽 멀리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길도라고 했다. 꿈결처럼 나타난 섬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뱃길도 꿈결 같았다. 해무 속에서 벗어난 우리는 마치 사막에 추락한 것처럼 섬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여 남쪽 바다 한 섬에 당도했다.
우리 일행 일곱은 한 대밖에 없다는 섬 택시 안에 차곡차곡 기어들었다. 세연정을 향해 달렸다. 동백꽃은 거기 있었다. 물 위에도 동백, 물 밑에도 동백, 물가에도 동백, 꽃 지천이었다. 보길도는 동백섬이었다. 덜컥 봄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아! 탄성을 질렀다.
정신이 들면서 그 섬의 짭짤한 공기를, 그 섬의 푸른 봄빛을, 해무에 막 씻겨난 햇빛을, 그 섬의 억센 사투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길 위의 돌멩이로 발장난을 하며, 바윗돌에 걸터앉아 엉덩이 밑으로 올라오는 봄기운을 느끼며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도심을 떠나 남쪽 어느 꽃섬에 와 있다는 걸로 지친 나를 달래었다.
활처럼 휜 예송리바닷가의 활엽목들이며, 거기서 건너다보이는 깃대섬이며 안장섬은 잘 보면 섬이라기보다 바다를 첨벙첨벙 걸어오는 공룡을 닮았다. 섬을 휘돌아 밤늦게 숙소에 돌아올 적에 그 집 담장 아래에서 툭, 동백꽃 지던 소리. 섬의 하루를 보내는 사이 내 귀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여는 정상의 청력으로 돌아왔다.
답답한 도회의 숲에서 우리가 그리워한 것은 먼 남쪽의 동백꽃도, 봄도, 섬도 아니었다. 멀리 벗어나고 싶은 탈출 욕망이었다. 문을 꼭 닫고 잠을 자는데도 툭, 툭, 꽃 떨어지는 소리에 그 밤은 잠을 설쳤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아득하다. 나의 한창 시절이던, 20년도 더 되는 세월 저쪽 편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