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소소한 일상의 행복

소소한 일상의 행복

by 이규섭 시인 2018.03.02

행복도 나이를 먹으면 소소한 것에서 찾게 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고 사는 게 행복에 이르는 쉬운 방법이다. 간절한 바람은 건강하게 살다가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눈을 감는 것이다. 부부지간에도 어느 한쪽이 질병에 시달리면 삶의 질이 동반 추락한다.
설 연휴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큰 누님 병문안을 다녀왔다. 올해 아흔으로 내게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여동생 세 명 뒤에 얻은 남동생이라 끔찍이 챙겼다. 왜소한 몸으로 칠 남매를 키우며 한평생을 동동거리며 살았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작아진 체구에도 정신은 또렷하고 목소리는 카랑카랑해 다행이다. 남은 여생 더 이상 고통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최면을 건다. 돌이켜 보면 큰 기복 없이 살았으니 실화다. 한 눈 팔지 않고 한 직종에 충실한 것은 자부심 담긴 팩트다. 물려 받은 유산 없고, 벌어놓은 재산이 없기에 퇴직 후 제2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 걱정이 앞섰다. 한 우물을 판 덕분에 직장을 그만 두고도 일거리가 이어진 것은 분수에 넘치는 행운이다.
시사주간지 편집 책임자, 정부 산하기관의 월간지 편집장, 일간지 객원논설위원 등 꾸준하게 역할이 주어졌다. 퇴직 언론인 모임의 편집위원으로 질곡의 역사 현장을 누빈 원로 언론인들의 못다 한 이야기를 인터뷰로 남긴 것도 작은 족적이다. 6.25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볐던 인터뷰 1호 선배는 올해 101세로 여전히 건재하다. 뉴스에 묻혀 살았던 무거운 삶을 내려놓아 홀가분하다. 은퇴 후 가장 보람 있는 활동은 미디어 강사다. 초중고 학생들과의 만남은 녹 쓴 의식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배우면서 가르친 소중한 시간들이다.
지친 두뇌의 휴식엔 음악만 한 보약도 없다.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들으니 편리하고 영상까지 곁들여 눈이 즐겁다. 음악에 얽힌 그 시절의 추억은 덤이다. 눈이 피로해지면 옥상에 나가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앞산을 바라본다. 화분을 관리하는 것도 기분 좋은 노동이다. 공휴일엔 동네 부근 약수터 나들이나, 자락길을 쉬엄쉬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小確幸)’이 올해의 트렌드라기에 흔한 줄임말 가운데 하나로 알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986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 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2013년 일본에서 유행했고 뒤늦게 차용됐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새로 산 청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이다.
소확행은 소박하게 삶의 공간을 꾸미는 스웨덴의 ‘라콤(Lagom)’, 집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는 여유의 프랑스 ‘오캄(Au calme)’, 아늑하고 포근한 정서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덴마크의 ‘휘게(Hygge)’와 맞닿아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위안을 얻는 게 공통점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가 가져다주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 누리는 게 작지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