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노란 옷 입고 오는 화사한 봄

노란 옷 입고 오는 화사한 봄

by 이규섭 시인 2018.02.14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19일) 절기에도 여전히 춥다. 올겨울은 사흘이 멀다 하고 북극 한파가 몰려와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어린 시절 추위는 훨씬 더 혹독했다. 마당에서 세수하고 문을 열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문풍지로 스며든 황소바람에 자리끼가 얼었다. 진눈깨비 펑펑 쏟아지는 밤이면 뒷산 소나무 가지가 비명을 지르며 부러졌다.
초가 추녀의 수정 고드름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낙수 되어 떨어지면 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낙수 소리는 맑고 경쾌하다. 마을 앞개울가 버들가지는 노란 햇살 머금고 포동포동 윤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두꺼운 얼음장 밑을 흐르던 개울물의 재잘거림도 들린다.
강원도에 야생 복수초가 피었다는 꽃소식이다. 순백의 눈을 헤치고 피어나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눈부신 봄의 전령사다. 개화시기가 음력 설 무렵이어서 입춘·우수 절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3년 전 이맘때 복수초를 보러 용인 한택식물원을 찾았다. 희귀 자생식물 유전자를 많이 보유한 식물원이다. 양지바른 산자락 낙엽 사이에 노란 얼굴 드러낸 복수초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다.
복수초는 가슴이 뜨겁다. 꽃잎은 코스모스를 닮았지만 부드러운 촉감은 아니다. 윤기가 흐르며 빳빳하여 조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번들거리는 꽃잎이 햇볕을 반사하여 복수초 핀 주변은 눈이 빨리 녹는다. 정말 가슴이 뜨거운 꽃인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진작가가 영하 1∼2도 날씨에 복수초 꽃송이 안의 온도를 재어봤다니 영상 5∼6도가 됐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뜨거운 가슴이 입증됐다. 복수초는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를 붙여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행운의 꽃으로 꽃말도 ‘영원한 행복’이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라고도 불린다.
이른 봄꽃은 노란색 옷을 입고 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제주도엔 산방산을 배경으로 유채꽃 노란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유채꽃 밭에서 인증샷을 날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뉴스가 됐다. 종종걸음으로 북상하는 화신(花信)은 멀지 않아 지리산 능선을 넘어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나무에 노란 물감을 칠할 것이다.
개나리꽃이 전국에 흐드러지게 피면 봄은 절정에 이르러 노란 풍선처럼 들뜬다. 잎 보다 먼저 핀 샛노란 색깔이 도드라져 눈부시다. 유채꽃이 제주를 상징하고, 산수유가 산동마을의 트레이드마크라면 개나리는 전국구다. 회색빛 겨울을 밀어내고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무리를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올해는 매운 추위로 봄꽃이 더 화사하게 필 것이다.
노란색은 사랑과 창조, 지혜의 상징으로 비유된다. 노란색은 포근하다. 노란색은 삼색 신호등 같은 기다림이다. 노란 모자에 노란 가방을 멘 어린이가 재잘거리며 유치원으로 향하는 모습은 귀엽고 앙증맞다. 노란색은 밝고 화사한 희망의 색깔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뿌리가 수액을 뽑아 올리듯 새봄엔 희망의 씨앗 가슴에 싹 틔웠으면 좋겠다. 노란 옷 입고 찾아오는 화사한 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