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어서 용서를 빌어!

어서 용서를 빌어!

by 권영상 작가 2018.02.08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마루에 벗어두었던 등산화 한 짝이 없어졌다. 닳아서 등산보다는 농사일을 하는데 신어 온 요긴한 신발이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없다. 신발장 안에도 없다. 거기라면 왜 한 짝만 넣어두었겠는가. 순간 옆집 옆집에 사는 나비네 누렁 강아지가 떠올랐다. 물고 가다가 혹 버렸을까 싶어 집 둘레를 한 바퀴 빙 돌고 왔을 때다.
‘아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 짧은 사이, 등산화 한 짝이 마저 사라졌다. 그가 강아지라면 강아지가 내 동선을 엿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 눈을 피해 신발을 물고 달아난 거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지만 신발도, 강아지 비슷한 흔적도 어디에고 없었다.
‘세상에나!’ 이 어이없는 일에 약간의 허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어쩔 텐가. 신발을 찾겠다며 마을길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닐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비네 집을 겨냥하고 그 집 안을 들여다보는 일도 마음 내키지 않았다. 오래 신어 낡았으니까 새로 마련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는 아주 잊고 말았다.
“선생님!” 근데 점심 수저를 막 놓을 때였다. 누가 나를 불렀다. 나가 보니 나비네 젊은 아빠였다. 내 등산화 한 켤레를 손에 들고, 목줄을 채운 그네 집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내 짐작대로 나비네 강아지가 내 등산화를 물고 간 게 틀림없었다. 강아지가 나를 보자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그러더니 제 주인 뒤에 숨어 내 눈치를 할끔할끔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제가 신발을 물고 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어!”
나비 아빠가 내 신발을 마루에 놓고는 제 강아지한테 으름장을 놓았다. 어찌나 진지하게 말하는지 고개를 빼던 강아지가 내 발 앞까지 기어 오듯 걸어와 납죽 엎드렸다.
“어서 빌어! 마당에 똥도 안 누겠다고 빌고!”
나비 아빠가 또 한 번 다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즈네 강아지가 똥을 누고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강아지는 내가 집을 좀만 비워두면 그걸 어찌 알고 우리 마당에 똥을 누고 달아난다. 한 주일쯤 비워두면 몇 무더기씩 누어 놓는다. 영역표시 치고 심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증인 없는 개똥을 놓고 젊은 나비 아빠와 이러니저러니 말한다는 것이 불편해 참으며 살았다. 더구나 우리 집 앞 조각밭을 나비네가 짓는 바람에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편이니 더욱 그랬다.
강아지가 내게 무안해하는 건 신발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나 모르게 누고 달아나던 제 똥에 대한 죄책감도 있어 보였다. 나는 이 기회다 싶었다.
“이제는 그런 나쁜 짓 하면 못 써요! 알았지? 용서해 줄 테니 돌아가거라!”
짓궂은 아이를 타이르듯 타일러 돌려보냈다. 그 탓일까. 그 사건 이후로 강아지는 나를 보면 고개를 푹 숙이고 길 한 편으로 비켜간다. 며칠간 집을 비웠다 돌아와도 물론 마당은 깨끗했다. 강아지가 내게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무안해하던 걸 나는 그때 처음 봤다. 분명 그때 자신의 과오를 강아지는 알고 있었다. 당사자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의 과오를 깨우쳐주듯이 강아지를 데려와 용서를 비는 젊은 나비 아빠의 모습이 왠지 훌륭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