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모든 것이 멈춰서기 전에

모든 것이 멈춰서기 전에

by 한희철 목사 2018.01.03

코끝이 시릴 만큼 날이 몹시 춥던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요. 마감일이 다가온 몇 가지 원고가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먼저 주유소를 찾았습니다. 전날 먼 길을 다녀와 차에 기름이 거반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겨울철엔 언제 눈이 올지를 알 수가 없고, 눈이 오면 차가 도로 위에 갇힐 수가 있으니 기름 채우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지 싶었습니다.
늘 다니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계산을 마친 뒤 시동을 거는데, 무슨 일인지 차에 시동이 걸리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러지 당황스러웠는데 시동만 안 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로 작동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와이퍼가 돌아가고, 삽입이 되어 있던 시디가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차가 서 있는 곳은 기름을 넣기 위해 자동차들이 연신 들어오는 곳, 방금 전 기름을 넣어준 청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청년은 혹시 가능하다면 차를 한쪽으로 옮겨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차가 서 있는 곳이 약간 경사진 곳, 차를 움직이려고 기어를 작동하니 웬걸, 기어는 마치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둔 것처럼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확인한 것은 브레이크도 전혀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주유소 한복판에 세워둔 채로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고, 잠시 뒤 차량 한 대가 찾아왔습니다. 오자마자 보닛을 열더니 선을 연결하고서는 내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배터리를 검사해 보더니 수명이 다 됐다며 배터리를 교체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탓에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아침이었습니다.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하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차가 멈춰 설 때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를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틀 전인가 자동차 시동을 걸며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일이 있었는데, 너무 쉽게 무시를 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예 시동조차 걸리지를 않아 차가 완전히 멈춰 서고 나서야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소진되어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때가 찾아오도록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 상태가 어떤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조건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멈춰선 뒤에야 방전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더없이 위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멈춰서기 전에 나를 살피는 것이 미룰 수 없는 삶의 지혜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