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먼저 경청한 뒤에 의견을 제시하라

먼저 경청한 뒤에 의견을 제시하라

by 정운 스님 2017.12.26

인사동에서 한 지인을 만나기로 하였다. 인사동 입구 한 벤치에 지인과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오래전에 출간된 책을 하나 선물했다. 그 책이 중국불교와 관련된 책이라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중국의 불교적인 관점이나 지도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데 길을 가던 70세쯤 된 할아버지가 멈춰 서서는 계속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지려는 찰나, 할아버지가 필자를 불렀다. 수첩에 그림과 한자 몇 줄이 있었는데, 내게 한자 문구를 물어보겠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한자로 붓글씨를 그대로 써서 선물하고 싶은데 한자 문구의 뜻을 몰라서 알고 싶다며, 해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을 보니, 불교 이야기인데 다섯 가지 종류에 대해 정의하고, 그 문구에 대한 해석이었다. 먼저 다섯 가지 종류를 말하고, 그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할아버지는 다섯 종류 가운데 한 가지가 틀렸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없는 시간 만들어서 설명해주는데,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꽉 차 있어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내용은 필자의 전공과 관련되어 있었다. 결국 그 자리를 피하면서 설명해드릴 수 없다고 하니, 오히려 내게 ‘왜 설명해주지 않느냐?’며 섭섭해하셨다.
그 잠깐의 순간을 겪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주관적인 생각에 꽉 차서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런 경우는 그분만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만한 마음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나이 들어갈수록 이런 증세가 더 심하다. 타인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을 중심에 두고, 자신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틀리다고 단언한다.
이런 것을 두고, 불교에서는 ‘상相으로 가득 찼다.’고 말한다. 여기서 ‘상’이란 자신의 고착된 사고방식, 집착심, 편견 등 그릇된 교만심을 말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그 상만 제거되어도 수행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곧 ‘내가 잘났다’라는 상을 죽여서 ‘나’만을 치켜세우지 말고, 타인의 생각이나 사유를 염두에 두라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 강의에서도 토론하는 시간이 있다. 어떤 주제를 갖고 한 수강생이 발표를 하고,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데, 가끔 원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의 주관이 강해서 타인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 1932~1912)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내용 중에 하나가 ‘경청의 기술을 연마하라.’는 내용이 있다. 곧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한 뒤에 상대를 이해시키라는 뜻이다. 그 할아버지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곧 입장 바꿔서 생각하고, 내 생각으로 꽉 찬 교만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대인관계에서 늘 살피고 살펴 조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