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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리의 물구나무서기

거저리의 물구나무서기

by 한희철 목사 2017.12.13

아프리카의 남서부 대서양 연안을 따라 펼쳐진 나미브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5,500년 동안 메마른 상태였다고 합니다. 해마다 봄가을에 며칠 동안만 비가 오는데, 대개는 억수 같은 비가 잠깐 퍼붓다가 이내 그쳐버립니다. 그리고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데 한낮 기온이 70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과연 그런 곳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생명이 존재한다 하여도 살아가기에는 최악의 조건이겠다 싶습니다.
‘나미브’라는 말은 나마족의 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나미브 사막은 이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땅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동식물들이 살아갑니다. 그중의 하나가 나미브 거저리입니다.
딱정벌레목 거저릿과에 속하는 나미브사막거저리는 나미브 사막에 서식하는 곤충입니다. 거저리가 물기를 찾기 힘든 나미브 사막에서 살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대서양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오는 안개 때문입니다.
나미브 사막 거저리는 밤이 되면 사막의 모래 언덕 꼭대기로 기어 올라갑니다. 언덕 꼭대기 부근은 밤하늘로 열을 반사하여 주변보다 다소 서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바다 쪽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립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벵겔라 해류를 만나 두텁고 축축한 안개로 사막을 덮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안개 속에는 뭇 생명이 필요로 하는 수분이 담겨 있는데, 이 귀중한 수분은 모래 언덕 꼭대기에만 잠깐 머물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해가 뜨면 이내 증발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미브 사막 거저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안개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거저리는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안개가 불어오는 쪽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특이한 행동은 안개가 걷힐 때까지 지속되는데, 거저리가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이유는 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몸길이가 2cm 정도인 거저리의 등에는 지름이 0.5mm 정도의 돌기가 1mm 간격으로 촘촘히 늘어서 있는데, 돌기의 끝은 물을 매우 좋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왁스 같은 물질에 의해 물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거저리는 이런 특징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으로 수분을 모읍니다. 돌기 끝부분에 조금씩 모인 수분 입자가 점점 커져서 물방울이 되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흐르게 되는데, 바로 그 물방울이 물구나무를 선 거저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덕을 내려가기 전 거저리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 자기 몸의 40%에 달하는 물을 마신다고 하니, 거저리의 선택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미브 사막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물기를 모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작은 벌레 거저리, 오늘 우리는 이 작은 곤충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래 언덕을 기어올라 불어오는 안개를 향해 물구나무를 서는 그런 인내와 겸손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생명을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