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물든다는 것

물든다는 것

by 강판권 교수 2017.11.13

나뭇잎에 물든다는 것은 변한다는 암시다. 형형색색의 물이 든다는 것은 나무들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단풍에 대한 느낌은 시간에 따라 무척 다르다. 나는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집 근처에 살고 있는 나뭇잎이 물드는 과정을 살핀다. 특히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감나무과 갈잎큰키나무 감나무의 잎이 물들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시간은 아주 짧지만 강렬하다. 감나무의 잎은 우리나라의 나뭇잎 중에서도 꽤 두껍다. 나는 감나무의 낙엽을 주어서 질감을 경험한다. 감나무의 잎을 만지면 스펀지처럼 약간 푹신한 느낌이지만, 잎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나는 어린 시절 감나무 꽃을 통해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듯이 잎을 통해서도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우선 잎 뒤집기 놀이를 한다. 감나무 잎의 앞면은 주황색으로 물들지만 뒷면은 연주황이다. 그래서 감나무 잎의 물든 모습은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 특히 감나무 잎 뒤집기 놀이는 잎맥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감나무의 잎맥은 줄기에서 어긋난다. 손으로 떨어진 감나무 잎을 잡고 뒷면을 자세히 보면 잎이 가지에 달렸을 때 볼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놀이는 잎의 톱니바퀴 찾기다. 나뭇잎의 톱니바퀴 정도는 나무의 특징 중 하나다. 감나무의 잎은 육안으로 톱니바퀴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톱니바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잎의 가장자리를 살펴야 한다. 감나무 잎의 가장자리를 확인하면 잎의 끝자락이 뾰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감나무 잎 놀이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글씨 놀이다. 감나무 잎에 글을 쓰는 놀이는 감나무 잎이 글을 적을 만큼의 장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크고 두꺼운 감나무 잎은 글씨를 적는 데 손색이 없다. 특히 감나무 잎은 부드럽기까지 해서 붓으로 글씨는 적는데도 아주 편리하다. 이처럼 감나무 잎에 글을 쓰는 놀이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놀이다.
감나무 잎을 통한 각종 놀이는 가을에 즐길 수 있는 전통놀이에 해당하지만 지금 이 놀이는 잊혀진지 오래다. 감나무 잎의 글씨 놀이는 앞으로 계승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놀이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감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아주 흔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나무 잎에 글을 쓰는 놀이는 특별히 재룟값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가을에 떨어진 잎을 주어서 사용하면 그만이다. 감나무는 ‘곶감과 호랑이’라는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감나무에 대해서는 열매인 ‘감’을 생각하지만, 열매는 잎이 광합성 작용을 하지 않으면 결코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잎에 글자를 쓰는 행위는 감나무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감나무의 물든 잎을 통해 놀이하는 과정은 감나무와 교감하는 시간이다. 감나무의 물든 잎은 나의 까칠한 마음을 물들이기에 충분하다. 나무들이 잎을 물들이는 시간에 인간도 메마른 마음에 물들이는 시간을 보내야만 이듬해에 촉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