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세상에 온기가 지켜지는 것은
그나마 세상에 온기가 지켜지는 것은
by 한희철 목사 2017.11.08
새벽기도회를 마치고는 곧장 목양실로 올라온 날이었습니다. 새벽 기도 후에 다시 잠에 들고 싶은 마음은 물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입니다. 잠깐 자는 쪽잠이지만 더없이 달콤한 꿀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런 유혹을 이기고 책상에 앉으면 그중 마음이 맑아집니다. 마음이 맑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으니, 가능하면 잠을 물리치고 새벽 시간을 누리려고 노력을 합니다.
잠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 새벽에 누굴까, 조심스레 문을 열었더니 함께 예배를 드린 교우가 찾아왔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일이에요?” 교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는 교우의 두 눈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에 들은, 몇 해 전 멀리 이사를 간 교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이야기를 새벽예배에 참석한 교우들에게 했던 터였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교우는 믿을 수가 없어서 사정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막내가 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더니 한창 일하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들어도 마음이 아픈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이 떨려 걸음도 잘 옮겨지지 않지만, 서둘러 찾아가 남편을 잃은 부인을 위로해야겠다며 돌아서는 교우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돌아서는 교우를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저만치 어린이들이 예배하는 집 앞으로 누군가가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체 누굴까,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았을까 싶어 다가갔더니 그는 어두컴컴한 마당 구석에서 허리를 굽힌 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바라보니 고양이 먹이와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예배당 주변에도 길고양이가 자주 눈에 띄곤 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새끼를 가진 것 같다면서 틈틈이 찾아와 먹이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동물을 좋아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는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어 그 일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여자분, 섬기고 있는 교회의 교우가 아닌데도 예배당 주변의 고양이를 눈여겨보고 고양이 먹이를 챙겨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내 일처럼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날 새벽 긍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내 집 고양이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챙기는 손길, 그런 마음이 있어 그나마 세상에 온기가 지켜지는 것이지 싶었습니다.
잠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 새벽에 누굴까, 조심스레 문을 열었더니 함께 예배를 드린 교우가 찾아왔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일이에요?” 교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는 교우의 두 눈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에 들은, 몇 해 전 멀리 이사를 간 교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이야기를 새벽예배에 참석한 교우들에게 했던 터였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교우는 믿을 수가 없어서 사정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막내가 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더니 한창 일하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들어도 마음이 아픈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이 떨려 걸음도 잘 옮겨지지 않지만, 서둘러 찾아가 남편을 잃은 부인을 위로해야겠다며 돌아서는 교우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돌아서는 교우를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저만치 어린이들이 예배하는 집 앞으로 누군가가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체 누굴까,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았을까 싶어 다가갔더니 그는 어두컴컴한 마당 구석에서 허리를 굽힌 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바라보니 고양이 먹이와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예배당 주변에도 길고양이가 자주 눈에 띄곤 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새끼를 가진 것 같다면서 틈틈이 찾아와 먹이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동물을 좋아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는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어 그 일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여자분, 섬기고 있는 교회의 교우가 아닌데도 예배당 주변의 고양이를 눈여겨보고 고양이 먹이를 챙겨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내 일처럼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날 새벽 긍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내 집 고양이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챙기는 손길, 그런 마음이 있어 그나마 세상에 온기가 지켜지는 것이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