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받으며
꽃씨를 받으며
by 김민정 박사 2017.11.06
이효석 문학관 옆 물레방아 휴게소에
꽃씨를 봉긋 내민 코스모스 가득하다
한 철을 살아온 흔적 까맣게 맺혀 있다
학교화단 빈 공터에 꿈 밭을 만들어서
내년 가을쯤은 그 곁에 나도 앉아
발자취 더듬어 가며 내 알곡도 추려볼까
아슬아슬 피어나도 뜻 있는 곳 길 있구나
십 리 바람길에 쏟아지는 햇살 따라
육탈한 불씨 모시듯 꽃씨를 받는 오후
- 졸시, 「꽃씨를 받으며」 전문
며칠 전 평창 부근 오대산을 답사 겸 다녀왔다. 내가 속한 문학회의 가을 여행을 위해 답사를 두 번이나 갔는데, 봉평 이효석문학관을 다녀오게 되었다. 월정사의 전나무숲길과 상원사와 이효석문학관 세 곳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효석문학관 앞의 군데군데 많이 심어놓은 메밀꽃은 이미 다 진 상태로 까만 메밀 씨만이 보였지만, 주변에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방앗간’도 만들어져 있고 섶다리며 갈대꽃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어울려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코스모스밭엔 아직도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그 사이사이 까맣게 꽃씨가 맺혀 있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미 식당이랑 숙소랑 찾아다니면서 길가에서 코스모스 씨를 보며 내년 우리 학교 화단에다 뿌려 많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꽃씨를 조금 모은 상태였는데, 코스모스 꽃씨를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어렸을 때 시골의 우리 집 작은 화단에 꽃씨가 떨어져 그다음 해에는 꽃씨를 구태여 심지 않아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 일 년 내내 작은 화단에 꽃들이 피어나던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의 심성은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인지, 그때 본 꽃들이 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꽃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한창 피었을 때는 정말 아름다웠겠구나 생각하며 꽃씨를 바라보노라니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폭풍우 속의 비바람도 견뎌내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내년을 위해 곱게 꽃씨를 만든 코스모스가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는 햇볕도 바람도 폭풍우도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한 작은 씨앗이 포용한 우주, 거기엔 내년 모습이 보였다. 바람에 한들한들 피어나는 코스모스, 곧 꺾일 듯 가냘프지만 그러면서도 강하게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모습 말이다. 어찌 보면 가시같이 보이기도 하는 꽃씨를 맨손으로 훑느라 손바닥에 더러 가시처럼 박히기도 했지만, 그 따끔거림을 참으며 말없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씨를 받았다. 내년 우리 학교 화단에서는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보리라. 잘 말려 간직했다가, 내년 봄에 잊지 않고 우리 학교 화단에 뿌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꽃을 보게 하리라.
내년 가을에 필 코스모스, 빨리 꽃을 보고 싶지만, 지금부터 겨울·봄·여름·가을 네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기다림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그리고 내년 봄부터는 직접 씨를 뿌리고 모종도 하고 때로 물도 주며 가꿔야 한다. 세상에 절로, 공짜로 되는 것이 없듯이 정성을 들여야만 가을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싹이 나서 자라면서 햇볕과 바람과 비를 견디고 포용하며 튼실한 뿌리를 내려 드디어 꽃이 피리라. 자라는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꽃씨를 봉긋 내민 코스모스 가득하다
한 철을 살아온 흔적 까맣게 맺혀 있다
학교화단 빈 공터에 꿈 밭을 만들어서
내년 가을쯤은 그 곁에 나도 앉아
발자취 더듬어 가며 내 알곡도 추려볼까
아슬아슬 피어나도 뜻 있는 곳 길 있구나
십 리 바람길에 쏟아지는 햇살 따라
육탈한 불씨 모시듯 꽃씨를 받는 오후
- 졸시, 「꽃씨를 받으며」 전문
며칠 전 평창 부근 오대산을 답사 겸 다녀왔다. 내가 속한 문학회의 가을 여행을 위해 답사를 두 번이나 갔는데, 봉평 이효석문학관을 다녀오게 되었다. 월정사의 전나무숲길과 상원사와 이효석문학관 세 곳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효석문학관 앞의 군데군데 많이 심어놓은 메밀꽃은 이미 다 진 상태로 까만 메밀 씨만이 보였지만, 주변에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방앗간’도 만들어져 있고 섶다리며 갈대꽃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어울려 멋진 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코스모스밭엔 아직도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그 사이사이 까맣게 꽃씨가 맺혀 있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미 식당이랑 숙소랑 찾아다니면서 길가에서 코스모스 씨를 보며 내년 우리 학교 화단에다 뿌려 많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꽃씨를 조금 모은 상태였는데, 코스모스 꽃씨를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어렸을 때 시골의 우리 집 작은 화단에 꽃씨가 떨어져 그다음 해에는 꽃씨를 구태여 심지 않아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 일 년 내내 작은 화단에 꽃들이 피어나던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의 심성은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인지, 그때 본 꽃들이 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꽃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한창 피었을 때는 정말 아름다웠겠구나 생각하며 꽃씨를 바라보노라니 한여름의 따가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폭풍우 속의 비바람도 견뎌내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내년을 위해 곱게 꽃씨를 만든 코스모스가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는 햇볕도 바람도 폭풍우도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한 작은 씨앗이 포용한 우주, 거기엔 내년 모습이 보였다. 바람에 한들한들 피어나는 코스모스, 곧 꺾일 듯 가냘프지만 그러면서도 강하게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모습 말이다. 어찌 보면 가시같이 보이기도 하는 꽃씨를 맨손으로 훑느라 손바닥에 더러 가시처럼 박히기도 했지만, 그 따끔거림을 참으며 말없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씨를 받았다. 내년 우리 학교 화단에서는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보리라. 잘 말려 간직했다가, 내년 봄에 잊지 않고 우리 학교 화단에 뿌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꽃을 보게 하리라.
내년 가을에 필 코스모스, 빨리 꽃을 보고 싶지만, 지금부터 겨울·봄·여름·가을 네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기다림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그리고 내년 봄부터는 직접 씨를 뿌리고 모종도 하고 때로 물도 주며 가꿔야 한다. 세상에 절로, 공짜로 되는 것이 없듯이 정성을 들여야만 가을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싹이 나서 자라면서 햇볕과 바람과 비를 견디고 포용하며 튼실한 뿌리를 내려 드디어 꽃이 피리라. 자라는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