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아무 말 없이 곁에서 보낸 일주일

아무 말 없이 곁에서 보낸 일주일

by 한희철 목사 2017.11.01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소중한 일입니다.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며 힘들어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니, 어찌 그 일이 쉬울 수가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헤아려 다가가야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한 보험회사가 공동으로 마포대교에서 벌인 자살방지 캠페인에 관한 이야기를 대한 적이 있습니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공모하여 다리 양쪽 난간에 그 말을 붙여 놓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이었습니다.
“밥은 먹었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서 꾹꾹 담아온 얘기 시원하게 한번 얘기해 봐요” “오늘 하루 어땠어? 별일 없었어? 말 안 해도 알아, 많이 힘들었구나.” “인생에 정답이란 없습니다.” “긴 다리를 건너면 겨울 지나듯 새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생각하면 모두가 고맙고 따뜻한 말입니다. 슬픔과 절망의 막바지에 몰렸던 누군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고 마포대교를 찾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그런 글을 대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캠페인을 벌이기 이전보다도 투신자의 수가 더 많이 늘어난 것입니다. 힘든 사람이 더 많아졌을 수도 있겠지만, 캠페인의 의도를 무색하게 하는 뜻밖의 결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서울시에 있는 한강 다리 29개에서 2014년 한 해 투신한 사람은 396명인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46.5%) 마포대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건네는 마지막 위로를 고마워하며 세상을 등질 곳을 찾았던 것인지, 이런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의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채 잿더미 위에 앉아 옹기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고 있는 욥에게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욥의 처지가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그들은 욥의 곁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누구 하나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태도는 달라집니다. 욥과 토론을 하고, 언쟁을 하고, 마침내 욥을 추궁하며 꾸짖기도 합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갔지만, 오히려 욥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뿐입니다.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충고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다만 애정 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하며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자고 했던 피에르 신부의 말이 떠오릅니다.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 고통당하는 자에겐 그것이 최선이다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위로가 되었던 시간은 아무 말 없이 곁에서 보낸 일주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