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백암 장터 한 바퀴

백암 장터 한 바퀴

by 권영상 작가 2017.10.19

백암농협 뒷마당에 16일, 오일장이 섰다. 한 바퀴 빙 돌며 사람들 속에 섞여본다. 순박한 장사꾼들과 말을 섞어보고 싶어 이것저것 묻는다. 신발 더미, 싸고 좋은 옷들, 시골할머니들이 벌여놓은 햇고구마, 햇밤, 햇대추……. 그냥 돌아보려고 장터에 들어섰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밥에 안칠 햇고구마를 사고, 약재 좌판에서 결명자를 샀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낙의 손에 이끌려 점심을 금방 먹고도 술떡 5천 원어치를 또 산다.
“오일장을 사랑하시는 시민 여러분, 우리나라 속초 앞바다에서 건진 코다리를 여러분께 드리려고 일부러 모셔가지고 나왔습니다. 코다리 12마리를 단돈 만 원 한 장, 만 원 한 장으로 여러분 밥상 위에 소중히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즉시 당 차량을 찾아주세요. 저녁이 있는 밥상을 차려드리겠습니다. 오일장을 사랑하시는......”
난데없이 ‘당 차량’이 나타나 그럴싸한 말로 호객을 한다.
조선시대부터 섰던 백암장은 그래도 알아주는 중소 장터다. 백암장이 이름을 떨친 건 70년대 중반, 우시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우시장이 번창하자, 돼지며 쌀시장도 농업지역답게 번창했다. ‘백암순대’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것도 그 옛날의 우시장과 돼지시장 덕분이다.
“연휴 끝이라 한산하네요.”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린 이는 안성목물 좌판 김 대표다. 그이는 여전히 싹싹하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는 김 대표가 한산한 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장터 한 자리를 잡고 앉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이가 취급하는 이 일이란 나무로 만든 물건을 파는 일이다. 삽자루, 괭이자루, 함지박, 조리, 도마, 키, 바구니, 체, 대빗자루, 지게, 발채, 대나무 갈퀴, 홍두깨, 밀대, 주걱, 말, 되, 버들고리, 도리깨, 쇠코뚜레, 다식판, 메주틀, 삼태기, 고지바가지, 빨래판, 또아리…….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정들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땅엔 아직도 나무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안성목물 김 대표는 근방의 장터를 돌며 그들을 만난다. 그 까닭인지 그이의 얼굴은 언제 보아도 선하고 말씨는 싹싹하다.
나도 여기서 키와 쇠스랑 자루를 샀다. 그리고 오늘 고향이 그리워 홍두깨 한 놈을 집어 든다. 연세 많으신 부친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란다.
“제일식당 순댓국 한 그릇 자시고 가시지요.”
김 대표가 인사 삼아 그 말을 한다. 알겠다고 인사했지만 이미 점심을 먹은 뒤다. 혼자 먹은 게 못내 미안하다. 그이와 작별하고 장터를 빠져나온다. 백암이 1일 6일 장이고, 근방 공도가 3일 8일, 죽산이 5일 10일, 김 대표도 간다는 용인 송전장이 4일 9일이다.
마트가 들어서고, 슈퍼마켓이며 상설시장이 열리는 데도 오일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장을 찾아도는 순박한 장돌뱅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판을 내주는 빈터가 있고, 그들을 맞아 함께 섞이는 나와 같은 무지렁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