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향수(鄕愁)와 향수(鄕樹)

향수(鄕愁)와 향수(鄕樹)

by 강판권 교수 2017.10.16

향수(鄕愁)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근심을 동반하고, 병을 낳는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향수병이라 부른다. 고향은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다. 고향은 한 존재가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큰 나무가 살고 있다. 고향의 큰 나무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다. 나의 고향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은행나뭇과의 은행나무다. 100살 정도의 은행나무는 수나무다. 그 옆에는 나이가 젊은 암나무가 살고 있지만,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머지않아 죽을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 수은행나무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여름철에 수은행나무에 올라서 매미를 잡던 추억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은행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 나무에 올라갈 수도 없거니와 은행나무가 몇 년 전 태풍으로 넘어져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는 또 하나의 나무는 장미과의 돌배나무였다. 돌배나무는 고향의 뒷산인 마음산(馬飮山) 중턱에 살고 있었다. 이곳의 돌배나무는 여름철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갔을 때 나에게 열매를 제공했다. 그러나 돌배나무의 열매는 익지 않으면 단단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철에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더라도 맛나게 먹지 못했다. 이곳의 돌배나무는 신목(神木)이기도 했다. 돌배나무 줄기에는 새끼줄이 둘러있었고, 나무 밑 둥 앞에는 큰 돌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유사를 정해서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그러나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 돌아가신 후 당산제는 멈추고 말았다. 더욱이 돌배나무도 꽤 오래전에 죽고 말았다.
우리나라 돌배나무 중 250살의 경북 울진군 쌍전리 산돌배나무(천연기념물 제408호)와 640살의 전북 진안군 마이산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는 고향의 돌배나무와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 봄 경상북도 영천에서는 350살 정도의 돌배나무를 발견했다. 우리나라의 돌배나무 중 나이가 많은 나무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나무에 대한 향수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만남의 깊이에 따라 깊은 향수를 느낄 수도 있다.
정지용의「향수」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간혹 정지용의 시를 읊기도 하지만 시를 노래로 만든 음반도 듣는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은은한 향수(香水) 같은 것이다. 그의 시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경험이 새록새록 풀잎처럼 돋는다. 그의 시 내용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절반을 농촌에서 보낸 나에게 정지용의 시는 곧 나의 삶과 다를 바 없다.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농촌은 신석기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산업사회에 편입되지 않았던 농촌의 풍경은 역사의 연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의 정체성은 거의 사라졌다. 현재 일부 남아 있는 것조차 박제화에 가깝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농촌 풍경, 부모가 계시지 않는 고향의 풍경은 아름답고 생산적인 향수를 만들지 못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부분 농촌은 향수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