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강에 가을이 배어들다
평창강에 가을이 배어들다
by 권영상 작가 2017.10.12
가을 속으로 흘러가는 평창강 앞에 섰다. 10월이 강물에 깊이 배어들어 귀가 서늘하다. 가파른 계곡을 돌아가는 가을 물은 저 홀로 우렁우렁 지상에 울음을 남긴다.
평창강은 용평 계방산 남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다수리를 끼고 흘러 평창읍을 관류한다. 거기서 다시 동강과 서강을 만나 남한강에 흘러든다. 길이만도 무려 149킬로미터. 유장한 강이다. 다수의 강기슭으로 내려가 그 물 곁에 선다. 물은 휘돌거나 밀치거나 때리거나 타고 오르거나 짓밟거나 또는 껴안거나 하면서 맹렬히 혹은 유순히 움직여 앞으로 나간다.
“평창강과 마주하면 울음이 난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이 깊은 산중으로 공직을 받아 온 이들은, 멀리 둔 가족과 고향이 그리우면 강가에 나와 하늘벽과 마주하며 운다고 했다. 세상에 울음을 모르는 이 없고, 상처 없이 사람 없다. 아무리 목석같은 이도 평창강 앞에 서면 깊은 심중에 쌓인 인생의 무게가 허물어지며 울음이 쏟아져 나온다 했다. 평창강은 울기 좋다. 협곡을 흐르는 물이어서 여느 강과 달리 물소리가 크고, 그 슬픈 반향이 사람의 울음줄을 건든다.
가을날, 강물 앞에 서니 이 물줄기의 처음과 끝이 그리워진다. 계방산에서 발원한다지만 거기는 어디인지, 남한강으로 흘러간다지만 그 물은 흘러 그 끝에서 무엇이 되는 건지. 평창강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무엇이 되어 홀로 이 지상에 남는 건지. 집을 두고 이렇게 멀리 와 젊은 날에 수없이 물었던 그 목마른 인생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과수원집 은숙이, 은숙이가 생각났어.” 아내가 그 옛날의 은숙이를 생각해냈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과수원집 은숙이는 지금은 어떤 여인이 되어 있을까. 이 마을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먼 대처로 떠났을까.
성묘를 마치고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첫 발령지 다수초등학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찾아온 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운동장엔 풀만 무성하다. 그때의 그 아이들도, 책 읽던 그 소리도, 풍금에 맞추어 노래 부르던 그 목소리도 다 사라졌다. 우리를 반기는 건 낯익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다. 우리는 우두커니 그 동상 앞에 서서 그 옛날의, 지나간 오랫적 시절을 떠올렸다.
결혼하기 전 아내가 이 학교에 근무할 때 나는 여러 차례 이 학교에 찾아왔었다. 그때 아내가 맡았던 반 아이들과 방과 후면 찾아가는 곳이 이 평창강이었다. 돌 밑에 숨은 물고기를 잡고, 가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은 파릇하게 남아있는데 마을엔 도무지 그 옛날의 사람 그림자가 없다.
평창강 물소리가 울고 싶은지, 살아오느라 서로 부딪고, 밀치고, 당기고, 때로는 역류하고 주저앉느라 생긴 참고 인내한 흔적들을 파헤치려 한다. 그동안 부부라는 이름을 지켜내느라 인내했던 울음이 새어 나오기 전에 이 울음 많은 강을 두고 돌아섰다.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강물 소리가 춥고 서늘하다.
학교 운동장에 세워둔 차를 몰아 강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지금은 번듯한 다리지만 그때는 나룻배를 타고 산수유 꽃 그림자 어리는 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네주던 분은 가끔씩 찾아오는 나를 알아보곤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평창강은 용평 계방산 남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다수리를 끼고 흘러 평창읍을 관류한다. 거기서 다시 동강과 서강을 만나 남한강에 흘러든다. 길이만도 무려 149킬로미터. 유장한 강이다. 다수의 강기슭으로 내려가 그 물 곁에 선다. 물은 휘돌거나 밀치거나 때리거나 타고 오르거나 짓밟거나 또는 껴안거나 하면서 맹렬히 혹은 유순히 움직여 앞으로 나간다.
“평창강과 마주하면 울음이 난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이 깊은 산중으로 공직을 받아 온 이들은, 멀리 둔 가족과 고향이 그리우면 강가에 나와 하늘벽과 마주하며 운다고 했다. 세상에 울음을 모르는 이 없고, 상처 없이 사람 없다. 아무리 목석같은 이도 평창강 앞에 서면 깊은 심중에 쌓인 인생의 무게가 허물어지며 울음이 쏟아져 나온다 했다. 평창강은 울기 좋다. 협곡을 흐르는 물이어서 여느 강과 달리 물소리가 크고, 그 슬픈 반향이 사람의 울음줄을 건든다.
가을날, 강물 앞에 서니 이 물줄기의 처음과 끝이 그리워진다. 계방산에서 발원한다지만 거기는 어디인지, 남한강으로 흘러간다지만 그 물은 흘러 그 끝에서 무엇이 되는 건지. 평창강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무엇이 되어 홀로 이 지상에 남는 건지. 집을 두고 이렇게 멀리 와 젊은 날에 수없이 물었던 그 목마른 인생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과수원집 은숙이, 은숙이가 생각났어.” 아내가 그 옛날의 은숙이를 생각해냈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과수원집 은숙이는 지금은 어떤 여인이 되어 있을까. 이 마을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먼 대처로 떠났을까.
성묘를 마치고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첫 발령지 다수초등학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찾아온 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운동장엔 풀만 무성하다. 그때의 그 아이들도, 책 읽던 그 소리도, 풍금에 맞추어 노래 부르던 그 목소리도 다 사라졌다. 우리를 반기는 건 낯익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다. 우리는 우두커니 그 동상 앞에 서서 그 옛날의, 지나간 오랫적 시절을 떠올렸다.
결혼하기 전 아내가 이 학교에 근무할 때 나는 여러 차례 이 학교에 찾아왔었다. 그때 아내가 맡았던 반 아이들과 방과 후면 찾아가는 곳이 이 평창강이었다. 돌 밑에 숨은 물고기를 잡고, 가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은 파릇하게 남아있는데 마을엔 도무지 그 옛날의 사람 그림자가 없다.
평창강 물소리가 울고 싶은지, 살아오느라 서로 부딪고, 밀치고, 당기고, 때로는 역류하고 주저앉느라 생긴 참고 인내한 흔적들을 파헤치려 한다. 그동안 부부라는 이름을 지켜내느라 인내했던 울음이 새어 나오기 전에 이 울음 많은 강을 두고 돌아섰다.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강물 소리가 춥고 서늘하다.
학교 운동장에 세워둔 차를 몰아 강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지금은 번듯한 다리지만 그때는 나룻배를 타고 산수유 꽃 그림자 어리는 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네주던 분은 가끔씩 찾아오는 나를 알아보곤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