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둥근 보름달이 더욱 아름답도록

둥근 보름달이 더욱 아름답도록

by 한희철 목사 2017.10.02

오래전에 읽은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민얀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민얀은 유대인들의 생활에 중심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누구라도 아무 때나 기도를 드릴 수 있지만, 공적인 예배로서 기도를 드릴 때는 반드시 유대인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있어야 했습니다. 회당을 세울 수 있는 최소 인원도 유대인 성인 남자 10명이었는데, 바로 그것을 민얀이라 불렀습니다.
책의 저자 레이첼에게 율법을 가르쳐주신 외할아버지는 민얀을 ‘내재하는 하느님’이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반만년 역사 동안 박해와 유배를 거듭하던 유대인들에겐 성소마저도 옮겨 다닐 수가 있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민얀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가끔 사람들은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회당에 불리어 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거리를 지나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유대인을 불러올 때도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런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곱 살 외손녀인 레이첼은 민얀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꼭 남자여야 해요, 할아버지?” “여자들 10명이 모여 있을 때는 하느님이 안 계신 거예요?” “옛날부터 그랬으면 다 맞는 거예요?”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율법에는 단지 10명의 남자라고 쓰여 있다고 원칙적인 대답만을 합니다. 사랑스러운 손녀 레이첼이 “여자 10명이 모여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할래요.” 했을 때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것이 율법에 쓰여 있는 것은 아니란다.”라고 대답을 하지요.
레이첼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해 주었던 외할아버지를 잠깐 만날 수 있는 시간, 레이첼은 외할아버지의 손을 가만 잡아드렸습니다. 그때 눈을 뜬 외할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레이첼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너 혼자로도 10명을 다 채우는 민얀이다.”
책을 읽으며 내용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외할아버지가 어린 레이첼에게 들려주는 “너는 너 혼자로도 10명을 다 채우는 민얀이다.”라는 말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던 추석을 맞았습니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귀소본능처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뿌리인 고향을 찾아갑니다. 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해도 꽉 막힌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 흩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 친구 등을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먹먹할 만큼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주어지는 모든 만남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거기 있어 고맙다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마음이 담긴 인사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레이첼에게 들려준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처럼 “당신은 당신 혼자로도 충분히 소중합니다.” 서로를 축복하는 인사를 서로에게 건넨다면 둥근 보름달은 더욱 넉넉하고도 푸근한 빛을 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