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로 바꾸소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로 바꾸소서

by 한희철 목사 2017.09.20

이제껏 찾은 적이 없었던 ‘평화의 댐’을 걸어서, 열하루 동안 DMZ를 따라 홀로 걷는 일정 중에 찾았습니다. 방산을 떠나 화천으로 가던 중에 ‘평화의 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댐’에 도착했을 무렵, 왜 그런지 기운이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걸음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날씨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폭염주의보가 연일 문자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국민재난처였던가요, 날이 뜨거우니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자가 아니더라도 머리 위에서 벌침처럼 쏟아지는 뙤약볕은 물론 도로에서 후끈 바람에 실려 올라오는 지열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평화의 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거대했습니다. 예전에 미국 서부에 있는 ‘후버댐’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규모 면에서는 그에 뒤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만한 구조물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댐에서는 요란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산 같은 높이도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인지, 어딘가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것인지 댐 곳곳에 불안할 만큼의 장대한 크레인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평화의 댐’은 이름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1986년 당시 건설부 장관은 모든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을 향하여 ‘금강산 댐’ 공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문이었는데, 북한이 대규모 ‘금강산 댐’을 건설하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오는 연간 18억 톤의 물 공급이 차단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이 ‘금강산 댐’을 붕괴시켜 200억 톤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는 수공(水攻)을 벌이면 남한은 꼼짝없이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며 방송에서는 연일 그래프까지 동원하며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63빌딩이 저 정도라면…, 두려움과 공포는 매우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퍼져갔습니다.
고조된 불안은 대응댐 건설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북한의 수공을 막기 위한 댐을 건설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적지가 않았습니다.
잠깐 가라앉는다고 영원히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 가라앉는다고 모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의 댐 건설 당시 모금한 성금의 사용내역과 금강산댐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일자 감사원에서는 진상규명을 했고, 감사 결과 금강산댐의 위협과 이를 대비하기 위한 ‘평화의 댐’의 필요성도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평화의 댐’은 ‘대한민국 최대 거짓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대학생들로부터 2위에 꼽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세계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 앞에 서서 댐 일대를 내려다보며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바쳤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바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