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자기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모두들 자기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by 한희철 목사 2017.09.13
열하루 동안 비무장지대를 따라 걷던 중 양구 방산을 떠나 화천을 향해 가던 길이었습니다. 금악리를 지나며 오천터널을 통과해야 했는데, 터널의 길이가 1,296미터였습니다. 제법 긴 터널이었지만 길다 느끼지 않았던 것은 이미 2,995미터나 되는 돌산령터널을 지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천터널이 오천 미터가 아닌 것이 다행이지, 스스로에게 농을 건네며 터널을 지났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 만난 동네가 ‘천미리’였습니다. ‘하늘 꼬리’라는 뜻을 가진 ‘천미’(天尾)는 그냥 얻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꼭대기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집 몇 채는 개미집처럼 작고 아뜩하게 보였고, 실뿌리 같기도 한 길은 장엄하게 둘러선 산과 산 사이로 가르마처럼 지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천미리를 향해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옆으로는 낙석을 방지하기 위한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철망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산양의 주요 서식지입니다” 바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듯, 현수막에는 산양 한 마리가 사진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본 뒤 다시 한 번 산세를 살펴보니 과연 산양이 살만한 곳이다 싶었습니다. 아찔한 높이로 솟은 산과 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럭바위와 선바위들, 웬만한 동물들은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깎아지를 바위도 무서워하지 않는 산양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이겠다 싶었습니다.
설마 산양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랄 일은 없겠지만, 현수막을 보고나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어디선가 산양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레 고갯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동차였습니다.
저 아래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자동차 한 대가 보인다 싶더니 자동차는 연이어 나타났습니다. 뱀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자동차들은 꼬리를 물고 달려왔습니다. 모두가 죽어라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전속력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자동차들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단번에 달려올라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벤츠, BMW, 렉서스, 포르쉐 등 모두가 외제차였고요.
내가 지금 뭘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산양이 살 만큼 장엄함이 가득 배어 있는 깊고 고요한 산중에 저, 저, 저, ○○○ 같은 짓거리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이 터졌는데, 그때 슬그머니 떠오르는 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현수막을 통해서 본 산양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허연 수염, 산양이 빙긋이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이르는 것 같았습니다.
‘내버려 두소. 모두들 자기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 만난 동네가 ‘천미리’였습니다. ‘하늘 꼬리’라는 뜻을 가진 ‘천미’(天尾)는 그냥 얻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꼭대기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집 몇 채는 개미집처럼 작고 아뜩하게 보였고, 실뿌리 같기도 한 길은 장엄하게 둘러선 산과 산 사이로 가르마처럼 지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천미리를 향해 내려오면서 보니 도로 옆으로는 낙석을 방지하기 위한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철망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산양의 주요 서식지입니다” 바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듯, 현수막에는 산양 한 마리가 사진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본 뒤 다시 한 번 산세를 살펴보니 과연 산양이 살만한 곳이다 싶었습니다. 아찔한 높이로 솟은 산과 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너럭바위와 선바위들, 웬만한 동물들은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깎아지를 바위도 무서워하지 않는 산양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이겠다 싶었습니다.
설마 산양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랄 일은 없겠지만, 현수막을 보고나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어디선가 산양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레 고갯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동차였습니다.
저 아래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자동차 한 대가 보인다 싶더니 자동차는 연이어 나타났습니다. 뱀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자동차들은 꼬리를 물고 달려왔습니다. 모두가 죽어라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전속력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자동차들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단번에 달려올라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벤츠, BMW, 렉서스, 포르쉐 등 모두가 외제차였고요.
내가 지금 뭘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산양이 살 만큼 장엄함이 가득 배어 있는 깊고 고요한 산중에 저, 저, 저, ○○○ 같은 짓거리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이 터졌는데, 그때 슬그머니 떠오르는 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현수막을 통해서 본 산양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허연 수염, 산양이 빙긋이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이르는 것 같았습니다.
‘내버려 두소. 모두들 자기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