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옳은 말인데 왜 찜찜하지

옳은 말인데 왜 찜찜하지

by 이규섭 시인 2017.09.01

러시아워. 평택역 앞 오거리는 차량과 행인이 뒤엉켜 혼잡하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어느 방향인지 도로안내판이 없다.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퉁명스럽게 “모른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길은 자주 바뀌고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해주니까.
교통정리에 바쁜 젊은 교통경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는 파견 나와서 이곳 지리를 잘 모르겠습니다.” 군기가 든 듯 뻣뻣한 목소리다. 대각선으로 건너가 의무경찰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휴대폰 앱으로 확인하십시오” 똑 소리 나게 정확한 안내다. 머리 허연 노인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젊은 세대의 생활패턴에 맞다. 옳은 말인데 왠지 찜찜하다.
틀린 안내는 아닌데 허를 찔린 듯 기분이 묘하다. 한마디 하려다 돌아섰다. 안성까지 가야 하는 강의 첫날이고, 의무경찰 또한 일과의 시작인 아침이 아닌가. 평택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은 걸어서 5분 거리, 안성 경유 버스는 몇 번이고 배차 간격은 몇 분인지 사전에 나름대로 꼼꼼하게 검색했는데도 초행길이라 방향을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인생의 동반자 휴대폰이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시대에 길을 묻는 노인만 바보가 됐다.
일선 공무원의 원론적인 응답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내놓은 다음 날 아침이면 검정비닐에 담긴 쓰레기가 대문 앞에 놓여 있어 불쾌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짜증난다. 심증 가는 이웃이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따질 수도 없다. 이번엔 쪼개진 수박을 통째로 비닐에 담아 버렸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 그냥 두면 썩어 냄새가 진동할 게 뻔하다. 어쩔 수 없이 가져다가 속은 파내 믹서기로 갈고, 껍질은 잘게 썰어 햇볕에 말린 뒤 버렸다.
며칠 뒤 똑같은 형태로 수박을 집 앞에 또 버렸다. 방울토마토 봉지가 덤으로 옆에 놓였다. 부아가 났다. 치워주면 버릇될 것 같다.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주소를 묻는다. 수거할 불법쓰레기 위치가 대로변이면 구청이 담당하고, 이면도로는 관할 주민센터에서 처리한다며 전화를 연결해 준다.
주민센터에서 전화를 받은 이는 앳된 목소리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수거를 요청했다. 젊은 공무원(인턴 일수도)은 “사진을 찍어 120다산콜센터로 민원을 넣으십시오.” 한다. 황당한 민원 안내다. “지금 무단투기 쓰레기 수거 요청을 하는 자체가 민원이에요. 조금 전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관할이 주민센터라고 전화를 돌려준 거요. 120다산콜센터에 민원을 접수시키면 구청을 경유하여 결국 주민센터에서 처리하는 것 아닌가요?” 까칠하게 쏘았다.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기에 전화해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끊었다. 담당자와 어쩌구저쩌구 반복해서 상황을 설명하며 “쓰레기 수거하러 올 때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지 말라’는 표지판을 가져와 부착해달라고 부탁했다. 쓰레기를 수거한 다음 날 표지판을 붙이고 갔다. 무단투기 행위가 사라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젊은 공무원의 민원처리 절차 안내가 찜찜하게 걸린다. 신세대의 세상읽기가 불편한 것은 나이 탓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