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매미와 나팔꽃

매미와 나팔꽃

by 강판권 교수 2017.08.21

매미와 나팔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과 풀이다. 두 생명체의 공통점은 삶의 기간이 아주 짧다는 사실이다. 매밋과의 매미는 종류마다 다르지만 세상에 나와 일주일 정도 살다가 죽는다. 미국의 매미 중에는 1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나와서 며칠 간 살다가 죽는다. 메꽃과의 나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사람들은 종종 매미와 나팔꽃의 삶을 덧없는 인생에 비유한다. 사람들이 매미와 나팔꽃을 자신의 삶에 비유하는 것은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상대화할 수 없다.
삶은 길이가 아니라 가치로 평가할 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자주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처음 어머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나이든 분의 넋두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어머님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 말씀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나의 어머님은 쇠약한 나머지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없는 단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 생명체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면 삶의 가치조차 상실한다. 한 존재가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목숨은 전혀 의미가 없다.
삶의 가치를 생각하면 매미와 나팔꽃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다. 국가도 건강한 장수를 복지 정책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행복한 삶은 각자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여름철 매미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베란다 창틀에 간혹 똬리를 튼 매미를 볼 때마다,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나는 주말 아침에 핀 나팔꽃을 보고 저녁에 진 나팔꽃을 보면서 꽃을 피우기까지 목숨을 건 나팔꽃의 치열한 삶의 과정을 되새긴다.
어떤 생명체든 길든 짧든 상관없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삶의 절대적 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 자신도 모르게 삶의 절대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하루하루의 삶을 아주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존재의 삶에 기웃거리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미와 나팔꽃은 한순간도 다른 존재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삶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매미와 나팔꽃의 삶은 결코 짧지 않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짧지도 길지도 않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다가 갈 뿐이다. 짧고 긴 것을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다.
진정한 삶의 철학을 깨닫고 나면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굳이 측은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측은한 마음을 갖지 않고 생명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으면 생명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삶의 태도를 깨달으면 매미와 나팔꽃을 자신의 삶처럼 이해할 수 있다. 살면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 대한 오해도 대부분 자신을 오해하는데서 비롯된다. 오해는 갈등을 낳고, 갈등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불행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