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시라는
by 김민정 박사 2017.08.14
시라는,
시라는, 끗발 없는 면역 없는 긴 감염에
혼자 울다 혼자 떠는 자위의 긴 병통에
세상의 헌 데를 돌다가
바람의 뒤나 밟다가
손을 거듭 씻어도 깊이 물든 보균으로
방언 마구 터지는 부족처럼 솟구치다
그 결에 발등을 찧는
부관참시 관을 짜는
제 설움에 높이 우는 무연고의 곡비인 양
조문의 긴 밤이다 위령의 운명인 양
시라는, 부적도 없는
귀신에 깊이 들린
- 정수자, ‘시라는’ 전문
시라는 것은 읽는 이에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인가, 고뇌를 덜어주는 것인가.
공자는 “얘들아, 왜 저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그것으로 일으킬 수 있고 그것으로 살필 수 있으며 그것으로 모일 수 있고 그것으로 원망할 수 있다. 그것을 가깝게 해서는 부모를 섬길 것이고, 그것을 멀리해서는 임금을 섬길 것이다. 그리고 날짐승과 길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시의 효용을 이른 말이다.
이때의 시는 시경 300편을 일컫는 말이다. 시 300이면 사무사란 말도 있다. 시경의 300편을 읽으면 사악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얼마나 시를 중요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표출되지 않은 답답한 감정에 얽매인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이 점은 시를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러할 것이다. 슬픔이나 우울함에 잠겨 있을 때 나직하고 어두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나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주는 것이다. 또 시는 그 간결한 말과 가락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통하고 어울리어 하나가 되게 하여 예전의 모내기 노래나 마을 협동의 일을 할 때 등 협동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함께 노래함으로써 그 리듬으로 피곤함을 잊으며, 목소리를 합하는 그 어울림 속에서 흥겨운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시집을 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쓰여진 작품을 통해 그 시인과 함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어디선가 같은 작품을 대하고 있을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있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한 편의 시, 한 권의 시집을 읽음으로써 이 모든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여는 이웃이 된다.
그러나 시인이 시를 쓸 때 그것까지 생각하며 시를 쓰지는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혜와 언어 속에서 시를 구상하며 한 편의 시를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구상해 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시인에게는 고통스럽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창작해야만 하는 괴로움이 있는 것이며, 위의 시는 창작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라는, 끗발 없는 면역 없는 긴 감염에
혼자 울다 혼자 떠는 자위의 긴 병통에
세상의 헌 데를 돌다가
바람의 뒤나 밟다가
손을 거듭 씻어도 깊이 물든 보균으로
방언 마구 터지는 부족처럼 솟구치다
그 결에 발등을 찧는
부관참시 관을 짜는
제 설움에 높이 우는 무연고의 곡비인 양
조문의 긴 밤이다 위령의 운명인 양
시라는, 부적도 없는
귀신에 깊이 들린
- 정수자, ‘시라는’ 전문
시라는 것은 읽는 이에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인가, 고뇌를 덜어주는 것인가.
공자는 “얘들아, 왜 저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그것으로 일으킬 수 있고 그것으로 살필 수 있으며 그것으로 모일 수 있고 그것으로 원망할 수 있다. 그것을 가깝게 해서는 부모를 섬길 것이고, 그것을 멀리해서는 임금을 섬길 것이다. 그리고 날짐승과 길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시의 효용을 이른 말이다.
이때의 시는 시경 300편을 일컫는 말이다. 시 300이면 사무사란 말도 있다. 시경의 300편을 읽으면 사악한 마음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얼마나 시를 중요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표출되지 않은 답답한 감정에 얽매인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이 점은 시를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러할 것이다. 슬픔이나 우울함에 잠겨 있을 때 나직하고 어두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나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주는 것이다. 또 시는 그 간결한 말과 가락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통하고 어울리어 하나가 되게 하여 예전의 모내기 노래나 마을 협동의 일을 할 때 등 협동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함께 노래함으로써 그 리듬으로 피곤함을 잊으며, 목소리를 합하는 그 어울림 속에서 흥겨운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시집을 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쓰여진 작품을 통해 그 시인과 함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어디선가 같은 작품을 대하고 있을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있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한 편의 시, 한 권의 시집을 읽음으로써 이 모든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여는 이웃이 된다.
그러나 시인이 시를 쓸 때 그것까지 생각하며 시를 쓰지는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혜와 언어 속에서 시를 구상하며 한 편의 시를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구상해 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시인에게는 고통스럽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창작해야만 하는 괴로움이 있는 것이며, 위의 시는 창작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