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밥상
꽃잎 밥상
by 김민정 박사 2017.05.08
오랍뜰 봄나물로 차려낸 점심상에
씀바귀와 원추리 꽃향기가 따라왔다
비로소 열린 두 마음 봄빛마냥 정겹다
파들파들 살아나는 봄기운 받쳐 들고
다듬고 손수 씻어 무쳐내 온 접시마다
웃음도 한 덩이 피어 아자창이 환하다
- 김민정, 「꽃잎 밥상」 전문
꽃 피던 4월이 지나고 녹음이 짙어 오는 오월이다. 봄에 돋아난 산나물로 밥상이 온통 화려하던 몇 년 전이 생각난다. 아버지 산소건 문제로 삼척시의 시인댁을 방문하던 날, 그는 당신의 집 오랍뜰에서 캐고 뜯은 봄나물들로 상을 하나 가득 채운 정성스러운 점심상을 차려주셨다.
봄이면 길가의 쑥이며 냉이 달래 씀바귀 등 밭에 나는 자연산 나물들과 또 녹음이 짙어질 때쯤 산속에 나는 산나물들로 반찬을 대신하던 시골과 산골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싱싱한 채소와 나물이 계절과 상관없이 식탁에 오를 수 있지만, 예전 산골에서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 나는 나물들을 뜯어 그것을 가마솥에 쪄내어 잘 펴서 말렸다가 나물이 없는 계절에 두고두고 반찬으로 먹었던 것이다. 봄이면 산에는 산나물이 참 많기도 했었다. 햇잎나물, 개미취, 나물취, 다래순, 곤드레, 이밥취, 떡취, 우산나물, 고사리…. 지금은 이름도 다 잊어버린 나물들이 참 많기도 했다. 얕은 동산에는 햇볕을 잘 받아 나물들도 일찍 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깊은 산에 나물 뜯으러 갈 때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곤하였다.
그들은 나물을 뜯어 넣을 빈 쌀포대와 도시락과 고추장 등을 준비하고, 뱀을 쫓는 약들도 가지고 가곤 했다. 나물을 뜯다가 점심때가 되면 샘물가에 둘러앉아 도시락과 막 뜯은 산나물 중에서 날 것으로 쌈을 싸 먹을 수 있는 곤드레나 이밥취 같은 나물들을 골라 고추장이나 된장 등에 싸서 먹곤 했다. 곤드레 생나물을 직접 산에서 뜯어오기 전에는 먹어보기 힘든 지금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곤드레 나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곤드레 나물은 어른들도 귀한 나물이라 여겼고, 어린 나의 입맛에도 맛있는 나물 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곤드레 나물밥과 보리밥을 일부러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별미로 먹지만, 어릴 때 산골에서 자란 나는 나물밥과 나물죽과 보리밥에 질렸었다. 그래서 한때는 쌀밥을 참 좋아했었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때는 모두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건강에 좋다며 일부러 잡곡을 섞어 먹지만….
그런데 몇 년 전, 삼척에 사는 시인 분이 차려주신 밥상에 놓인 그 봄나물들이 인상 깊게 자리한 건, 어릴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서가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하게 살며 먹었던 거칠었던 그 음식들이 요즘은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다시 또 오월 단오가 다가오고 있다. 큰 나무들이 많은 깊은 산에는 오월 단오쯤 되어야 산나물이 무성하다. 이맘때면 가끔씩 나물을 뜯으러 깊은 산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가던 어머니가 생각나곤 한다.
세상은 늘 변하고 있다. 어제 각광받던 것들이 오늘은 무가치로 평가되기도 하고, 오늘 가치 없게 느껴지던 것들이 내일은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 변화에 알게 모르게 적응하며, 우리들은 오늘도 자신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씀바귀와 원추리 꽃향기가 따라왔다
비로소 열린 두 마음 봄빛마냥 정겹다
파들파들 살아나는 봄기운 받쳐 들고
다듬고 손수 씻어 무쳐내 온 접시마다
웃음도 한 덩이 피어 아자창이 환하다
- 김민정, 「꽃잎 밥상」 전문
꽃 피던 4월이 지나고 녹음이 짙어 오는 오월이다. 봄에 돋아난 산나물로 밥상이 온통 화려하던 몇 년 전이 생각난다. 아버지 산소건 문제로 삼척시의 시인댁을 방문하던 날, 그는 당신의 집 오랍뜰에서 캐고 뜯은 봄나물들로 상을 하나 가득 채운 정성스러운 점심상을 차려주셨다.
봄이면 길가의 쑥이며 냉이 달래 씀바귀 등 밭에 나는 자연산 나물들과 또 녹음이 짙어질 때쯤 산속에 나는 산나물들로 반찬을 대신하던 시골과 산골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싱싱한 채소와 나물이 계절과 상관없이 식탁에 오를 수 있지만, 예전 산골에서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 나는 나물들을 뜯어 그것을 가마솥에 쪄내어 잘 펴서 말렸다가 나물이 없는 계절에 두고두고 반찬으로 먹었던 것이다. 봄이면 산에는 산나물이 참 많기도 했었다. 햇잎나물, 개미취, 나물취, 다래순, 곤드레, 이밥취, 떡취, 우산나물, 고사리…. 지금은 이름도 다 잊어버린 나물들이 참 많기도 했다. 얕은 동산에는 햇볕을 잘 받아 나물들도 일찍 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깊은 산에 나물 뜯으러 갈 때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곤하였다.
그들은 나물을 뜯어 넣을 빈 쌀포대와 도시락과 고추장 등을 준비하고, 뱀을 쫓는 약들도 가지고 가곤 했다. 나물을 뜯다가 점심때가 되면 샘물가에 둘러앉아 도시락과 막 뜯은 산나물 중에서 날 것으로 쌈을 싸 먹을 수 있는 곤드레나 이밥취 같은 나물들을 골라 고추장이나 된장 등에 싸서 먹곤 했다. 곤드레 생나물을 직접 산에서 뜯어오기 전에는 먹어보기 힘든 지금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곤드레 나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곤드레 나물은 어른들도 귀한 나물이라 여겼고, 어린 나의 입맛에도 맛있는 나물 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곤드레 나물밥과 보리밥을 일부러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별미로 먹지만, 어릴 때 산골에서 자란 나는 나물밥과 나물죽과 보리밥에 질렸었다. 그래서 한때는 쌀밥을 참 좋아했었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때는 모두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건강에 좋다며 일부러 잡곡을 섞어 먹지만….
그런데 몇 년 전, 삼척에 사는 시인 분이 차려주신 밥상에 놓인 그 봄나물들이 인상 깊게 자리한 건, 어릴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서가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하게 살며 먹었던 거칠었던 그 음식들이 요즘은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다시 또 오월 단오가 다가오고 있다. 큰 나무들이 많은 깊은 산에는 오월 단오쯤 되어야 산나물이 무성하다. 이맘때면 가끔씩 나물을 뜯으러 깊은 산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가던 어머니가 생각나곤 한다.
세상은 늘 변하고 있다. 어제 각광받던 것들이 오늘은 무가치로 평가되기도 하고, 오늘 가치 없게 느껴지던 것들이 내일은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 변화에 알게 모르게 적응하며, 우리들은 오늘도 자신 앞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