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흙의 비밀
땅과 흙의 비밀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04.25
얼마 전 고향의 텃밭에서의 일이다.
겨우내 숨죽이던 대지에서 봄날이 되니 여기저기서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서 느껴진 것이 있다. 민들레, 냉이꽃, 제비꽃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 들풀들이 움트고 있었다. 아~ 살아있다는 것을 이 봄만큼 느낄 수 있는 시절이 있을까. 온갖 들풀이며 숨겨진 씨앗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니 전율이 느껴지며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이 온몸을 에워싸고 돈다.
우리는 봄이 되면 의당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대하지만 한 톨의 씨앗이 대지를 뚫고 싹이 터오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일이다. 그것은 땅 안의 적당한 수분과 양분, 그리고 햇볕이 가세하여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축복이자 기적 같은 것이다. 바위 위의 씨앗은 결코 싹트지 않으니까.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들도 결국 대지에 뿌리가 굳건히 내렸기 때문이니 그 또한 불문가지.
그러기에 좋은 봄날에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을 제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땅(대지)에서 생명이 돋아나고 그것을 토대로 모든 생명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기에 땅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기초이다.
어린 시절은 흙과 가까이하는 삶이 거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놀이터가 따로 없던 시절이니 공터만 있으면 어느 곳이라도 우리의 놀이터였다. 그곳은 당연히 흙투성이였다. 땅뺏기나 비석세우기를 하고 사금파리로 땅 위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둘로 나누어 게임을 하곤 했다. 땅은 생명의 보고이자 놀이문화의 마당이었다.
그때는 길조차 당연히 비포장의 흙길이었다.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면 피하기보다는 신기해서 그 먼지 속을 따라갔던 기억도 또렷하다. 이렇게 흙과 함께 살아가니 흙 속의 수많은 미생물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흙에서 멀어진 요즘의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면역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뒤뜰에서 제 맘대로 자라는 튼튼한 토종닭과 양계장에서 집단으로 키워지는 조류독감에 쩔쩔매는 연약한 닭들과의 차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질병이나 정서적 불안, 스트레스 등도 어쩌면 그 비밀이 흙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흙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삭막한 도시적 삶에 지친 사람들이 귀촌이나 귀농을 생각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도피나 의례적인 것이 아닌 이 무궁무진한 흙과 자연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온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살갑게 다가온다. 흙은 품어 안는 정신이다.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스민 무한한 어머니이다. 이런 흙에서 멀어지면서 세상은 각박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땅과 흙과 함께 하는 집, 흙에서 최대한 가까운 그런 집, 뜰이 있고, 화단이 있고, 텃밭 한 뙈기라도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대지의 기운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바로 거기에 사랑과 정(情)이 깃들 거라 믿기에.
그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흙에서 가깝지 않음이 아쉽게 다가온다. 조만간 베란다에 작은 상자밭이라도 준비해야겠다.
겨우내 숨죽이던 대지에서 봄날이 되니 여기저기서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서 느껴진 것이 있다. 민들레, 냉이꽃, 제비꽃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 들풀들이 움트고 있었다. 아~ 살아있다는 것을 이 봄만큼 느낄 수 있는 시절이 있을까. 온갖 들풀이며 숨겨진 씨앗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니 전율이 느껴지며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이 온몸을 에워싸고 돈다.
우리는 봄이 되면 의당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대하지만 한 톨의 씨앗이 대지를 뚫고 싹이 터오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일이다. 그것은 땅 안의 적당한 수분과 양분, 그리고 햇볕이 가세하여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축복이자 기적 같은 것이다. 바위 위의 씨앗은 결코 싹트지 않으니까.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들도 결국 대지에 뿌리가 굳건히 내렸기 때문이니 그 또한 불문가지.
그러기에 좋은 봄날에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을 제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땅(대지)에서 생명이 돋아나고 그것을 토대로 모든 생명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기에 땅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기초이다.
어린 시절은 흙과 가까이하는 삶이 거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놀이터가 따로 없던 시절이니 공터만 있으면 어느 곳이라도 우리의 놀이터였다. 그곳은 당연히 흙투성이였다. 땅뺏기나 비석세우기를 하고 사금파리로 땅 위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둘로 나누어 게임을 하곤 했다. 땅은 생명의 보고이자 놀이문화의 마당이었다.
그때는 길조차 당연히 비포장의 흙길이었다.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면 피하기보다는 신기해서 그 먼지 속을 따라갔던 기억도 또렷하다. 이렇게 흙과 함께 살아가니 흙 속의 수많은 미생물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흙에서 멀어진 요즘의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면역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뒤뜰에서 제 맘대로 자라는 튼튼한 토종닭과 양계장에서 집단으로 키워지는 조류독감에 쩔쩔매는 연약한 닭들과의 차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질병이나 정서적 불안, 스트레스 등도 어쩌면 그 비밀이 흙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흙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삭막한 도시적 삶에 지친 사람들이 귀촌이나 귀농을 생각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도피나 의례적인 것이 아닌 이 무궁무진한 흙과 자연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온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살갑게 다가온다. 흙은 품어 안는 정신이다.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스민 무한한 어머니이다. 이런 흙에서 멀어지면서 세상은 각박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땅과 흙과 함께 하는 집, 흙에서 최대한 가까운 그런 집, 뜰이 있고, 화단이 있고, 텃밭 한 뙈기라도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대지의 기운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바로 거기에 사랑과 정(情)이 깃들 거라 믿기에.
그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흙에서 가깝지 않음이 아쉽게 다가온다. 조만간 베란다에 작은 상자밭이라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