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투사

투사

by 안양교차로 2017.04.24

꽃이 본 창밖 풍경
내 안으로 끌어온다

적당한 거리 유지
안전을 확보하듯

유리창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꽃과 나
-졸시, 「투사」 전문

시인이 창밖으로 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그 결과가 시인의 안쪽으로 다가오는 신비한 경험이 이루어진 이 시편은, 그렇게 ‘유리창’이라는 차단과 소통의 이중성을 지닌 소재를 통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안전을 확보해가는 시인의 예술적 자의식을 보여준다. 그렇게 “유리창/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꽃과 나”야말로 사물과 내면이 상호 ‘투사’를 이루면서 원심과 구심의 항구적 운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호작용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 어디 꽃과 나뿐이겠는가? 모든 사물들이 그러하고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서로가 투사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숲에 들면 다양한 나무들을 보게 된다. 그 크기와 모양새와는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그러한 많은 차이들의 나무들이 모여서 숲을 이룬다. 큰 나무 아래에서 작은 나무들이 자라기도 하고, 작은 나무 곁에 큰 나무들이 자라기도 한다.
우리들의 다양한 생각도 그렇게 모여 숲을 이룬다. 제각기 생각의 나무가 되어 자기의 생각대로 자라난다. 큰 생각은 큰 나무로 자라고, 작은 생각은 작은 나무로 자란다. 또한 행복한 생각은 행복한 나무로 자라나고, 불행한 생각은 불행한 나무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다양하고 많은 생각이 모여 사는 숲, 그 숲의 한 그루 나무로 살면서 자기가 어떤 나무들과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는지는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한다. 어떤 나무와 가까이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자신이 먼저 결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바른 생각을 하고, 행복한 생각을 하며 다른 나무와 적당한 거리 유지, 관계 유지를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무끼리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자신이 자라기가 힘들고, 너무 거리가 멀면 엉성한 숲이 형성될 것이다. 즉 인간관계라면 그 관계가 소원해진다. 바른 생각을 하고, 행복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나무 위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와 즐겁게 노래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사악한 생각을 하며 사는 나무는 자신의 삶의 모습에서 고통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나무에는 어떠한 새들도 날아와 노래하거나 지저귀지 않을 것이다. 밝고 맑은 생각을 지니고 바르게 살아가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마침내 숲을 이루는 큰 나무가 되고 생각도 굵은 거목이 될 것이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 나무를 보며 /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 나는 잊었다. //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 또 기다리지 않는다 / 한결같은 망각 속에 /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 자랄려고 한다 //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고 한다 - 김윤성의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