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남을 도와주지 말라”
“한국에선 남을 도와주지 말라”
by 이규섭 시인 2017.04.14
“(한국에선)타인의 삶에 개입하거나 타인을 도와주려고 하지 말라.” 부산에 사는 콜롬비아인 M씨와 한국인 아내 부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게시물은 급속히 퍼져 나가며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선 남을 도와주지 말라’는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저변에 깔렸다.
보도에 따르면 M씨 부부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한 다섯 살 남자 어린이를 보고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운전자는 비명을 듣고 아이를 발견하여 차를 멈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M씨는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어린이 어머니에게 충고했다. 옆에 있던 아이의 60대 할아버지가 나서 “콜럼버스인 부부가 소리치는 바람에 아이가 놀라 화가 났다”는 게 시비의 발단이다. 언쟁과 몸싸움을 벌이다 경찰서로 갔다.
아이 할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인종차별 발언은 물론 욕설까지 퍼부었다. M씨 부부는 경찰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자제하도록 요청했다. 경찰은 한술 더 떠 “깜둥이라고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인종차별 발언이라고 하느냐”고 얼버무리며 합의를 권유했다니 어처구니없다. M씨 부부는 합의금 제의를 거절하고 사과만 받아들였다. “한국 사회의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없어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성정(性情)이 어쩌다 이렇게 삐뚤어졌는지 서글프다. 아이를 위기에서 구출해준 M씨 부부에게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손자를 놀라게 했다고 시비를 거는 까칠한 성정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다.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핵가족화되면서 공동체 정신은 퇴색되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공중도덕이니 예의범절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식당에서 아이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도 아이를 나무라기보다 되레 아이를 나무라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만 명 넘는다. 취업 외국인, 결혼 이민자, 외국인 유학생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00명 중 4명이 외국인으로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것이 외국인이다. 단일민족과 단일문화의 긍지를 먹고 살아온 세대의 한 사람이지만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빠르게 바뀌었음을 절감한다. 그런데도 결혼 이민자 외엔 사실상 이민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주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실정이다. ‘한국인은 교육 수준도 높은데 3분의 1 넘는 국민이 외국인과 이웃하기를 싫어한다’며 미국 언론이 꼬집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기피했던 3D 업종의 노동력을 대신 채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대체 인력 필요성 등 긍정적인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 구성원을 국민과 외국인으로 나누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다민족, 다문화시대에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모으는 것은 공동체의 역할이고 삐뚤어진 성정을 올곧게 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보도에 따르면 M씨 부부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한 다섯 살 남자 어린이를 보고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운전자는 비명을 듣고 아이를 발견하여 차를 멈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M씨는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어린이 어머니에게 충고했다. 옆에 있던 아이의 60대 할아버지가 나서 “콜럼버스인 부부가 소리치는 바람에 아이가 놀라 화가 났다”는 게 시비의 발단이다. 언쟁과 몸싸움을 벌이다 경찰서로 갔다.
아이 할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인종차별 발언은 물론 욕설까지 퍼부었다. M씨 부부는 경찰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자제하도록 요청했다. 경찰은 한술 더 떠 “깜둥이라고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인종차별 발언이라고 하느냐”고 얼버무리며 합의를 권유했다니 어처구니없다. M씨 부부는 합의금 제의를 거절하고 사과만 받아들였다. “한국 사회의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없어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성정(性情)이 어쩌다 이렇게 삐뚤어졌는지 서글프다. 아이를 위기에서 구출해준 M씨 부부에게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손자를 놀라게 했다고 시비를 거는 까칠한 성정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다.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핵가족화되면서 공동체 정신은 퇴색되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공중도덕이니 예의범절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식당에서 아이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도 아이를 나무라기보다 되레 아이를 나무라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만 명 넘는다. 취업 외국인, 결혼 이민자, 외국인 유학생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00명 중 4명이 외국인으로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것이 외국인이다. 단일민족과 단일문화의 긍지를 먹고 살아온 세대의 한 사람이지만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빠르게 바뀌었음을 절감한다. 그런데도 결혼 이민자 외엔 사실상 이민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주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실정이다. ‘한국인은 교육 수준도 높은데 3분의 1 넘는 국민이 외국인과 이웃하기를 싫어한다’며 미국 언론이 꼬집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기피했던 3D 업종의 노동력을 대신 채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대체 인력 필요성 등 긍정적인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 구성원을 국민과 외국인으로 나누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다민족, 다문화시대에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모으는 것은 공동체의 역할이고 삐뚤어진 성정을 올곧게 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