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청라언덕
4월, 청라언덕
by 권영상 작가 2017.04.06
골목길에 목련이 꽃등을 단다. 이때면 사람도 나무도 꽃 시샘에 시달린다. 그러나 어찌된 건지 4월이 오도록 매운 꽃 시샘이 없다. 기상예보로는 지금이 4월 중순의 날씨란다. 푸근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살던 길갓집 목련나무가 하얀 붕대를 감은 꽃등을 내건다. 어둑실한 골목이 대낮처럼 환해지는 느낌이다. 겨울이 물려주고 떠나간 뒷자리에 이처럼 깨끗한 순백의 꽃이 왔다.
라벤더 화분을 난간에 늘 내놓던 이층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난다. 이때 딱 맞는 귀에 익은 노래다. 피아노를 치는 그도 골목길 목련꽃을 내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 봄, 목련의 추억에 젖어있던가. 무심코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흥얼거린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본디 제목이 ‘사우(思友)’였다는 ‘동무 생각’이다. 부를수록 움츠러들었던 몸이 활짝 펴지는 듯, 내 안의 어둠과 고여있던 추위가 말끔히 달아나듯 환해진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다. 과목이 국어인 까닭에 내 자리는 교무실이 아니라 주로 학교 도서실이었다. 도서실은 본관과 떨어져 있었고, 그 도서실 복도를 쭉 따라가면 음악실이 있었다.
입학식이 있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음악실에서는 해마다 ‘동무 생각’이 흘러나왔다. 아마 음악 교과서 처음 부분에 그 곡이 실려 있는 모양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한 소절씩 먼저 들려주시면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꽃 시샘 추위로 좀 으스스해지는 봄, 빈 도서실에 혼자 앉아 책을 읽을 때 문득 들려오는 아이들 합창 소리는 천상의 노래 같다. 음악실에서 부르는 노래가 빈 복도를 타고 몇 번이나 굽이굽이 울려 산뜻한 봄 개울물처럼 내 귓가를 찾아온다. 마치 백합꽃 피는 청라 언덕에 온 듯, 한 여학생을 몹시 짝사랑하던 추억으로 작곡했다는 작곡자의 설렘과 그리움에 감전된 듯 아련해진다.
겨울이 번민과 고통의 나날이었다면 그 끝에 닥쳐온 봄엔 흰 나리꽃 향내가 물씬 묻어있다. 4월은 약동한다. 생명이 요동친다. 빛이 일렁이고 대지가 일어선다. 작은 일도 큰일처럼 가슴을 쿵쾅대고, 짧은 봄밤의 꿈도 잡힐 듯 아물거린다. 웬만한 일에도 감동할 줄 모르던 가슴이 작은 풀꽃을 보고와 오랫동안 행복감에 젖는다.
나는 복도에 나가, 이제 코밑에 보송송한 털이 자라는 소년들의 청초한 목소리를 듣느라 괜히 과학실을 지나고 보건실을 지나 그 음악실 출입문의 작은 창으로 안을 흘끔 들여다본다. 아이들 틈에 끼어 앉아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운동장을 내다본다. 운동장 둘레에 치렁치렁한 버드나무들이 한창 연둣빛 속잎을 피우고 있다. 그 아래 농구장에선 봄도 무거운 듯 웃통을 벗고 농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파트 후문으로 막 들어선다. 나는 봄잠 같이 달고 짧았던 그 옛 시절의 4월에서 깨어난다. 여기는 내 상념의 4월과 달리 봄이 좀 늦다. 아파트 관리실 옆 살구나무 우듬지에 이제야 붉은 빛이 우련히 돈다.
라벤더 화분을 난간에 늘 내놓던 이층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난다. 이때 딱 맞는 귀에 익은 노래다. 피아노를 치는 그도 골목길 목련꽃을 내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 봄, 목련의 추억에 젖어있던가. 무심코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흥얼거린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본디 제목이 ‘사우(思友)’였다는 ‘동무 생각’이다. 부를수록 움츠러들었던 몸이 활짝 펴지는 듯, 내 안의 어둠과 고여있던 추위가 말끔히 달아나듯 환해진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다. 과목이 국어인 까닭에 내 자리는 교무실이 아니라 주로 학교 도서실이었다. 도서실은 본관과 떨어져 있었고, 그 도서실 복도를 쭉 따라가면 음악실이 있었다.
입학식이 있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음악실에서는 해마다 ‘동무 생각’이 흘러나왔다. 아마 음악 교과서 처음 부분에 그 곡이 실려 있는 모양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한 소절씩 먼저 들려주시면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꽃 시샘 추위로 좀 으스스해지는 봄, 빈 도서실에 혼자 앉아 책을 읽을 때 문득 들려오는 아이들 합창 소리는 천상의 노래 같다. 음악실에서 부르는 노래가 빈 복도를 타고 몇 번이나 굽이굽이 울려 산뜻한 봄 개울물처럼 내 귓가를 찾아온다. 마치 백합꽃 피는 청라 언덕에 온 듯, 한 여학생을 몹시 짝사랑하던 추억으로 작곡했다는 작곡자의 설렘과 그리움에 감전된 듯 아련해진다.
겨울이 번민과 고통의 나날이었다면 그 끝에 닥쳐온 봄엔 흰 나리꽃 향내가 물씬 묻어있다. 4월은 약동한다. 생명이 요동친다. 빛이 일렁이고 대지가 일어선다. 작은 일도 큰일처럼 가슴을 쿵쾅대고, 짧은 봄밤의 꿈도 잡힐 듯 아물거린다. 웬만한 일에도 감동할 줄 모르던 가슴이 작은 풀꽃을 보고와 오랫동안 행복감에 젖는다.
나는 복도에 나가, 이제 코밑에 보송송한 털이 자라는 소년들의 청초한 목소리를 듣느라 괜히 과학실을 지나고 보건실을 지나 그 음악실 출입문의 작은 창으로 안을 흘끔 들여다본다. 아이들 틈에 끼어 앉아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운동장을 내다본다. 운동장 둘레에 치렁치렁한 버드나무들이 한창 연둣빛 속잎을 피우고 있다. 그 아래 농구장에선 봄도 무거운 듯 웃통을 벗고 농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파트 후문으로 막 들어선다. 나는 봄잠 같이 달고 짧았던 그 옛 시절의 4월에서 깨어난다. 여기는 내 상념의 4월과 달리 봄이 좀 늦다. 아파트 관리실 옆 살구나무 우듬지에 이제야 붉은 빛이 우련히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