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꽃을 먹는 새

꽃을 먹는 새

by 한희철 목사 2017.04.05

어느 골짜기에 내리는 눈일까요, 드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싶습니다. 주먹만 한 순백의 눈송이들이 말이지요. 막 피어나는 목련꽃들은 충분히 막 떠나온 한겨울의 눈송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2층 서재로 오르는 계단 옆에 서 있는지라, 서재를 오르내릴 때마다 목련나무를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막 꽃들이 피어나는 목련나무를 바라보며 한 가지 낯설게 여겨졌던 모습이 있습니다. 목련나무 아래가 어수선했던 것입니다. 겨우내 꽃망울을 보호했던 꽃눈이 이제는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이 땅에 떨어져 나뒹굽니다.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아낌없이 떨어져 내린 꽃눈이 장하고 착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목련나무 아래가 어수선했던 것은 꽃눈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뒹굴고 있는 것 중에는 목련의 꽃잎도 있었습니다. 꽃잎 조각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목련꽃은 다 피지도 않았는데 떨어진 꽃잎이라니, 다시 눈여겨보니 떨어진 꽃잎은 온전한 한 장의 꽃잎이 아니었습니다. 꽃잎 조각이 떨어져 마치 팝콘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가 장난삼아 하얀 색종이를 손으로 잘게 찢어 버린 듯했지요.
찢긴 채로 떨어진 꽃잎, 짚이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목련이 몽우리를 맺기 시작할 때부터 목련나무를 찾아오던 새가 있었습니다. 덩치는 물론 우는 소리도 큰 직박구리가 서너 마리씩 연신 목련나무를 찾아오고는 했던 것입니다.
직박구리야 가을철이 되면 붉게 매달린 주목 열매를 먹기 위해서 열심히 찾아들던 새, 하지만 열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무를 찾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어 목련을 찾는 직박구리를 궁금하게 여기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꽃잎 조각들, 아무래도 직박구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아침이었습니다. 서재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때마침 서너 마리의 직박구리가 목련나무를 찾아왔습니다. 궁금하던 차에 직박구리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간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지들끼리 뭐라 요란하게 지껄이던 직박구리는 부지런히 가지와 가지를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이기를 시작했습니다.
무얼 하는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직박구리는 목련의 꽃망울을 쪼아 하얀 꽃잎을 떼어낸 뒤 꽃잎을 맛있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부리로 쪼아낸 하얀 꽃잎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고, 그러면 직박구리는 다른 가지로 날아가 다시 꽃망울을 쪼아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흘린 꽃잎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져 말라 있었던 것이었지요.
세상에 꽃을 먹는 새가 있구나, 하얀 목련꽃을 먹는 새가 있구나, 칙칙한 빛깔의 직박구리가 순백의 꽃잎을 먹는구나,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덩치며, 이름이며, 빛깔이며 직박구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생각의 근거는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꽃을 먹는 새 직박구리를 통해 마음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