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례
목례
by 강판권 교수 2017.04.03
전국에서 꽃 소식이 들려오는 시기다. 지자체도 분주하게 꽃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나도 캠퍼스 곳곳에서 피는 꽃을 감상하느라 무척 바쁘다. 봄에는 야외 수업도 잦다. 많은 사람들이 지자체에서 준비하는 축제를 비롯해서 자신들만의 명소를 찾아 꽃구경을 떠난다. 그런데 사람들이 꽃을 만나면 반가워하면서도 나무나 풀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꽃을 만나러 가면 우선 나무에게 인사한다. 나는 나무에 대한 인사를 ‘목례(木禮)’라 부른다. 목례는 나무에 대한 예의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목례는 사람들 간 눈으로 하는 인사법이지만, 나는 나무에 대한 예의도 매우 중시한다. 나의 나무에 대한 인사는 재미 삼아 하는 장난이거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진지한 태도다. 나의 나무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결코 새롭지 않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경우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마을의 당산나무에게 인사한다. 전국 곳곳에는 사람들이 큰 산을 넘을 때 인사를 하고 떠난 나무들이 남아 있다. 먼 길을 가다가 한 그루 큰 나무를 만나면 지친 나그네에게 큰 위안일 수밖에 없다. 나무는 갈 때도 그 자리에 있고, 돌아올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람은 이러한 모습의 나무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느낀다. 반면 사람은 나무와 달리 수시로 마음을 바꾼다. 기다리겠다던 사람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오겠다는 사람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부모를 뵙고 가는 곳을 알려 허락을 청하고, 돌아와서 반드시 부모를 뵙고 인사드리며 안색을 살폈다[出必告反必面]. 『예기(禮記)·곡례상(曲禮上)』에 나오는 이러한 태도가 양반들의 상례(常禮)였듯이, 나무에 대한 예의도 상례였던 시절도 있었다. 예절은 한 사회의 질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예절도 바뀐다. 전통시대의 나무에 대한 예의는 나무를 사람처럼 존경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시대도 반드시 나무를 존경해야 한다.
선진사회는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루어진다.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곧 배려다. 보통 사람들은 꽃을 상상해도 입가에 웃음을 띤다. 직접 만나면 탄성을 자아낸다. 그런데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선물을 안겨주는 식물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생명체의 도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사는 사람에게조차 안부 전화나 문자를 보내는데, 자신에게 매일 즐거움을 주는 식물에게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선진사회는 단순히 국민소득의 높낮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수준이 중요한 기준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식물에게, 같은 단지에 사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 곧 선진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무에 대한 인사, 곧 목례는 선진사회로 가는 시작이자 끝이다. 나무가 없으면 인간은 잠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를 만나 인사를 건네는 순간, 자신도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목례는 사람들 간 눈으로 하는 인사법이지만, 나는 나무에 대한 예의도 매우 중시한다. 나의 나무에 대한 인사는 재미 삼아 하는 장난이거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진지한 태도다. 나의 나무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결코 새롭지 않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경우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마을의 당산나무에게 인사한다. 전국 곳곳에는 사람들이 큰 산을 넘을 때 인사를 하고 떠난 나무들이 남아 있다. 먼 길을 가다가 한 그루 큰 나무를 만나면 지친 나그네에게 큰 위안일 수밖에 없다. 나무는 갈 때도 그 자리에 있고, 돌아올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람은 이러한 모습의 나무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느낀다. 반면 사람은 나무와 달리 수시로 마음을 바꾼다. 기다리겠다던 사람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오겠다는 사람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부모를 뵙고 가는 곳을 알려 허락을 청하고, 돌아와서 반드시 부모를 뵙고 인사드리며 안색을 살폈다[出必告反必面]. 『예기(禮記)·곡례상(曲禮上)』에 나오는 이러한 태도가 양반들의 상례(常禮)였듯이, 나무에 대한 예의도 상례였던 시절도 있었다. 예절은 한 사회의 질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예절도 바뀐다. 전통시대의 나무에 대한 예의는 나무를 사람처럼 존경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시대도 반드시 나무를 존경해야 한다.
선진사회는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루어진다.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곧 배려다. 보통 사람들은 꽃을 상상해도 입가에 웃음을 띤다. 직접 만나면 탄성을 자아낸다. 그런데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선물을 안겨주는 식물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생명체의 도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사는 사람에게조차 안부 전화나 문자를 보내는데, 자신에게 매일 즐거움을 주는 식물에게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선진사회는 단순히 국민소득의 높낮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수준이 중요한 기준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식물에게, 같은 단지에 사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 곧 선진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무에 대한 인사, 곧 목례는 선진사회로 가는 시작이자 끝이다. 나무가 없으면 인간은 잠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를 만나 인사를 건네는 순간, 자신도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