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세요
묻지 마세요
by 한희철 목사 2017.03.29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머무르는 2층 서재로 오르는 계단 옆엔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때마다 가지치기를 한 탓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나무입니다. 잠깐 피었다가 지는 목련의 꽃보다는 지붕 위로 떨어지는 낙엽이 더 귀찮았기 때문일까요, 옆으로 퍼지는 가지를 매정하게 잘라낸 탓입니다.
기억 속의 목련나무는 순백의 빛깔로 남아 있습니다. 잎을 잊은 채 꽃으로만 피어 불꽃이 타오르듯 나무 하나가 온통 타오르는, 뭔가 수줍어하면서도 열정을 감추지 않는 꽃으로 말이지요. 목련이 흔치 않던 동네였기 때문일까요, 목련이 피면 그 어느 가로등보다도 목련나무가 더 화사하게 빛나고는 했습니다.
서재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목련나무에 눈이 갔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는 나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게 없습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겨울 동안 나무는 온통 빈 가지로 섰을 뿐이지요. 하지만 늘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끝, 도톰하게 솟은 꽃눈 위에 남아 있는 마른 이파리 몇 개였습니다.
비쩍 마른 이파리들이었습니다. 아이 손바닥보다도 크지 않을 작은 이파리들이었지요. 주변의 울창했던 나뭇잎들 모두 지고, 떨어진 나뭇잎들 이미 흙으로 돌아갔지 싶은 시간이 지났지만, 몇몇 이파리들이 목련의 가지 끝에 남아 겨울을 났습니다. 마를 대로 말라 더없이 연약해 보이는 이파리가 어찌 겨울을 견디는 것일까, 마치 <마지막 잎새>를 지켜보는 소설 속 화가처럼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이파리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겨울바람은 차갑고 매섭습니다. 사나운 발톱을 단 듯 많은 순간 할퀴듯이 지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함박눈이 내립니다. 펑펑 쏟아진 함박눈은 아무 데고 쌓일 곳만 있으면 먼 길 달려와 고단하다는 듯이 층층이 쌓입니다.
대체 저 마른 이파리에 무슨 힘이 있기에 칼날 바람을 견디고 제게는 버거울 눈의 무게를 이기는 것일까, 목련나무 마른 이파리를 바라볼 때마다 신기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요, 며칠 전 정말로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라보니 더 이상 이파리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언제 떨어진 것인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매서운 겨울을 견딘 이파리가 봄이 돌아오자 ‘나는 겨울이 더 편하고 좋았어요’ 투정을 하듯 슬그머니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파리 떨어진 자리에서 하얀 꽃망울이 터지기를 시작했으니까요.
사랑의 의미를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지켜지는 것인지를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겨우내 꽃눈을 지키는 마른 이파리를 바라보라 대답하고 싶습니다. 자신은 약하고 버틸 힘이 없지만 떠나면 안 되기에, 떠날 수가 없기에 자기 자리에 남는 것, 목련의 마른 이파리는 충분히 대답을 하고 있다 싶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지는지 모르는 척 물을 일이 아니다 싶습니다.
기억 속의 목련나무는 순백의 빛깔로 남아 있습니다. 잎을 잊은 채 꽃으로만 피어 불꽃이 타오르듯 나무 하나가 온통 타오르는, 뭔가 수줍어하면서도 열정을 감추지 않는 꽃으로 말이지요. 목련이 흔치 않던 동네였기 때문일까요, 목련이 피면 그 어느 가로등보다도 목련나무가 더 화사하게 빛나고는 했습니다.
서재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목련나무에 눈이 갔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는 나무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게 없습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겨울 동안 나무는 온통 빈 가지로 섰을 뿐이지요. 하지만 늘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끝, 도톰하게 솟은 꽃눈 위에 남아 있는 마른 이파리 몇 개였습니다.
비쩍 마른 이파리들이었습니다. 아이 손바닥보다도 크지 않을 작은 이파리들이었지요. 주변의 울창했던 나뭇잎들 모두 지고, 떨어진 나뭇잎들 이미 흙으로 돌아갔지 싶은 시간이 지났지만, 몇몇 이파리들이 목련의 가지 끝에 남아 겨울을 났습니다. 마를 대로 말라 더없이 연약해 보이는 이파리가 어찌 겨울을 견디는 것일까, 마치 <마지막 잎새>를 지켜보는 소설 속 화가처럼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이파리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겨울바람은 차갑고 매섭습니다. 사나운 발톱을 단 듯 많은 순간 할퀴듯이 지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함박눈이 내립니다. 펑펑 쏟아진 함박눈은 아무 데고 쌓일 곳만 있으면 먼 길 달려와 고단하다는 듯이 층층이 쌓입니다.
대체 저 마른 이파리에 무슨 힘이 있기에 칼날 바람을 견디고 제게는 버거울 눈의 무게를 이기는 것일까, 목련나무 마른 이파리를 바라볼 때마다 신기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요, 며칠 전 정말로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라보니 더 이상 이파리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언제 떨어진 것인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매서운 겨울을 견딘 이파리가 봄이 돌아오자 ‘나는 겨울이 더 편하고 좋았어요’ 투정을 하듯 슬그머니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파리 떨어진 자리에서 하얀 꽃망울이 터지기를 시작했으니까요.
사랑의 의미를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지켜지는 것인지를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겨우내 꽃눈을 지키는 마른 이파리를 바라보라 대답하고 싶습니다. 자신은 약하고 버틸 힘이 없지만 떠나면 안 되기에, 떠날 수가 없기에 자기 자리에 남는 것, 목련의 마른 이파리는 충분히 대답을 하고 있다 싶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지는지 모르는 척 물을 일이 아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