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고갯마루 학교

고갯마루 학교

by 권영상 작가 2017.03.02

동네 산에 고갯마루가 있지요. 꽤나 숨 가쁜 고개라 구청에서 쉼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평상 두 개와 나무벤치 몇 개. 산에서 내려오며 그 고갯마루 쉼터를 지날 때입니다. 꽤 큰 청색 텐트가 거기 처져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어떤 텐트인 줄을 압니다. 내려가는 길을 멈추고 그 텐트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에 다가가 나무를 붙잡고 운동을 합니다. 아니 하는 척합니다. 그럴 때입니다.
“마침내 산꼭대기에 이르렀어. 우리는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 가지고 간 물은 다 마셔버려 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지.”
이윽고 그 청색 텐트 안에서 책을 읽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나옵니다. 나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는 성자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지.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내 오두막 한 채를 발견하고는 그쪽을 향해 달렸어.”
그 차분차분한 목소리 앞에 네 명의 어린아이가 나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텐트 옆구리엔 교실 창문 같은 흰 비닐로 낸 작은 창이 있습니다. 손에 하나씩 손난로를 쥔 아이들이 평상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는 두 분입니다. 그 두 분이 번갈아 가며 책을 읽습니다.
나는 그들이 읽어주는 이 이야기가 탁낫한의 ‘마음속 샘물’이라는 걸 압니다. 산에 소풍을 갔는데 성자가 있다는 말에 그를 찾다가 홀로 숲에 앉아 있는 샘을 만나고 거기서 자신을 찾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이지요.
나는 텐트 안에 네 명의 어린아이와 두 분 엄마를 남겨두고 한참 만에 돌아섰지요.
이 고갯마루 쉼터에서 이들을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한번은 눈 내린 뒷날이었지요. 그때 그들은 텐트 바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지요. “야, 재미난 눈사람이구나!” 하며 나는 그들이 만드는 눈사람 곁으로 다가갔지요. 몸통이 없고 머리만 있는 눈사람도 있고, 다리를 만들어 붙인 덩치 큰 눈사람도 있었지요. 눈과 눈썹과 코는 낙엽을 뜯어 붙였습니다.
나는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어보려다 그것도 실례일 것 같아 그냥 떠나왔지만 보면 알지요. 당번인 듯한 엄마 두 분이 네 분 엄마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 언덕에 산 공부를 하러 온 거지요. 도심에서 한참을 걸어와야 닿은 이 고갯마루에 공부라면 공부고 노는 거라면 노는 공부를 하러요.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엄마들이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듣고, 산이 선물하는 바람과 새소리와 나무들 이야기를 듣는 거지요.
한 보름 전입니다. 그때에는 이 고갯마루 쉼터 상수리나무 둥치에 아이들의 노작이 걸려있었습니다. 단단한 종이에 해놓은 낙엽 공부였지요. 모양이 작고 둥근 잎과 길쭉한 잎과 뾰족한 잎을 한 줄씩 붙인 노작이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누군가 좀 특별히 봐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성의 없이 자식을 학원으로 내모는 대신 이렇게 산을 찾아와 겨울나무와 눈과 비와 숲속의 햇빛을 만나게 해주는 엄마들이 너무나 대견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자녀에게 성스러움을 가르치는 성자가 아닐까, 그 생각을 해 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