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엄마 젖

엄마 젖

by 한희철 목사 2017.02.22

산골마을의 겨울은 유독 춥고 길게 느껴집니다. 겨울이 오면 마치 겨울나라에 든 듯 집집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는 봄이 충분히 왔다 싶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얼어붙은 것은 대지뿐만이 아니어서 개울물도 얼어붙고, 웅덩이도 얼어붙고, 논바닥도 얼어붙고, 어떤 때는 잘 보관했다 싶은 항아리마저 얼어붙고 나니 사방이 얼어붙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됩니다. 산마다 빈가지로 선 나무 사이로 눈이 내리면 산은 이내 범의 무늬처럼 얼룩무늬를 띕니다. 산 하나를 멋지게 수놓은 얼룩무늬는 봄이 돌아올 때까지 지워지지를 않습니다.
오래전 작고 외진 시골마을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날이 몹시 매섭던 한겨울, 교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교우 가정에는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키우던 소가 송아지를 낳았던 것이었지요. 작고 소소한 모든 일을 감사로 받으며 사는 교우가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날이 이렇게도 매서운데 외양간에 있는 송아지는 괜찮은지 걱정을 하자 교우가 특유의 느리고 선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리 추운 날 낳다 해두 송아지를 방으로 들이면 안 돼유. 그러문 죽어유. 동지섣달 추운 밤에 낳대두 그냥 놔둬야지, 불쌍하다 해서 군불 땐 방에 들이문 오히려 죽구 말아유.”
송아지가 아무리 추울 때 태어났다 해도 그냥 놔둬야지 불쌍하다 여겨 따뜻한 곳으로 들여오면 오히려 죽게 되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았는지, 교우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송아지는 낳자마자 어미가 털을 핥아주문 금방 뛰어 다녀유. 낳자마자 어미젖을 먹는데 그걸 초유라구 하지유. 그 초유를 먹으문 아무리 추운 겨울 날이래두 추운 걸 모른대유. 초유 속에 추운 걸 이기게 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들어있대유. 동네 어른들이 그랬어유.” 아무리 날이 추워도 엄마 젖을 빨면 얼마든지 추위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신기하고도 귀하게 다가왔습니다.
송아지와 초유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부분 모유를 먹였지만, 지금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강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초유가 가지고 있는 성분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젖을 먹이는 어미와 젖을 먹는 송아지 사이의 따뜻한 접촉 때문 아닐까, 그 든든한 유대감이 외부의 어떤 악조건이라도 이기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아이들이 점점 강인함을 잃어버리고 나약해지고 있는 이유도 엄마와 아기의 친밀한 접촉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싶었던 것입니다. 엄마 젖처럼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험한 세상을 이기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