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탐매(探梅)문화

탐매(探梅)문화

by 강판권 교수 2017.02.20

내가 나무를 무척 사랑하는 이유는 평등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 나무는 빈부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직접 가야만 대면할 수 있다. 물론 외국의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나무를 만나기 위해서 외국까지 갈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즐길 수 있다. 남쪽에서 서서히 들려올 매화 소식도 언제든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매화는 대나무 및 소나무와 함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 문화아이콘이다. 삼국에는 매화와 관련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자료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매화를 찾아가는 이른바 탐매 혹은 심매문화다. 이명국과 신잠의 <<탐매도(探梅圖)>>, 심사정의 <<파교심매도(橋尋梅圖)>> 등은 탐매의 대표작이다. 탐매의 주인공은 당연히 양반이지만 지금은 누구든지 탐매를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화 관련 시를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지독하게 매화를 사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정당매(政堂梅)다. 정당매는 고려시대 정당 문학을 지낸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의 벼슬을 붙인 이름이다. 산청군에는 정당매 외에도 고려시대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 생몰년 미상)이 심은 원정매(元正梅),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이 심은 남명매(南冥梅)가 있다. 단속사지 옆에 살고 있는 정당매와 남사리 예담촌에 살고 있는 원정매는 600년이 넘어서 이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을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반면 산천재에 살고 있는 450살 정도의 남명매는 그런대로 건강한 편이다. 정당매, 원정매, 남명매는 산청의 ‘삼매(三梅)’라 불린다. 이처럼 산청군에 오랜 매실나무가 살고 있는 것은 이곳의 선비들이 매실나무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후손들이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매실나무처럼 장미과의 나무들은 대부분 몇 백년을 살기가 어렵지만, 산청의 이른바 고매(古梅)는 장수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산청의 고매를 만나고 있지만 해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특히 몸이 죽을 지경인데도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탐매는 단순히 향기로운 꽃을 구경하는 놀이가 아니라 매화의 삶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공부 과정이다.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도 매화가 그 어떤 나무보다 훌륭한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탐매 객들은 대부분 매화의 향기를 쫓는데 급급할 뿐 아니라 사진촬영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서 매실나무보다 사람 수가 많은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탐매의 정신이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결과다.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매화 축제를 열지만 나는 아직 탐매의 정신을 살리는 축제를 보지 못했다. 매화 축제가 품위와 권위를 가지려면 반드시 탐매의 정신까지 계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화 축제는 명품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