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남의 집 귀한 자식

남의 집 귀한 자식

by 이규섭 시인 2017.02.20

봄은 다가오는데 취업 한파는 갈수록 혹독하다. 청년 실업자가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 주요국과 비교한 통계를 보니 더욱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청년 실업률은 10.7%로 치솟아 10.8%를 기록한 2000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은 10여 년 전 10%를 넘었으나 지난해 5.2%로 떨어졌다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두 배 늘었다니 안타깝다.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청년 실업률이 매년 상승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 6개국에 불과하다. 지구촌 전체가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지만 한국만큼 청년 일자리를 얻기 힘든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 14일 마감한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에 역대 최대인 22만 8,368명이 지원하여 46.5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도 고용 장벽의 높이를 실감케 한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알바)로 내몰린다. 알바가 직업이 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우리나라 알바 인구는 대략 2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일본은 1,000만 명에 달할 만큼 이미 보편화 됐다. 퇴직과 폐업으로 갈 곳 없는 장년층과 주부, 빈곤 노년층까지 알바시장에 뛰어든다. 편의점과 주유소 등 일부 업종은 청년층과 시니어가 일자리를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알바시장에도 찬바람이 불면서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최저임금 수준이면 다행이라고 한다.
알바시장이 커지면서 임금체불, 주휴수당 미지급 등 부당 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인권침해 사례가 불거져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알바몬이 지난해 알바생 1,150명을 대상으로 ‘갑질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9명은 근무 도중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갑질 유형별로는 ‘불합리한 요구와 부당한 지시’가 38.9%로 가장 많았다. ‘이유 없는 화풀이’(29.9%), ‘인격적인 무시’(24.8%), ‘감정 노동(무조건적인 친절, 참음 등) 강요’(24.0%) 등이 뒤를 이었다. 알바생들이 갑질을 당한 대상으로는 ‘사장님, 고용주’(38.3%), ‘손님’(26.8%)’, ‘상사, 선배’(20.0%) 순이었다. 갑질을 당하면 10명 중 7명은 “일단 참는다”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얼마 전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 들렀더니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서빙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보니 시쳇말로 웃프다. 발상이 기발해 웃음이 나고 ‘갑(甲)’질하며 진상 떠는 고객이 오죽 많으면 저러나 싶어 서글프다.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자’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담겼다.
알바생들을 종 부리듯 호통치는 고객들을 흔히 본다. 밑반찬은 셀프라 써놓았는데도 반말로 더 가져오라고 큰소리친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 손님도 더러 있다. 자기 자식한테도 저럴까 싶기도 하고 나도 혹시 진상을 떨지 않았는지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손님이 왕’인 시대가 아니다. ‘욱’하는 성질이 나올 때 자기 자식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