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생명이다
밥은 생명이다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02.16
집 뒤편에서 내려다보면 미타사 비탈길 양지바른 바위 위에 개 몇 마리가 배회하는 것이 가끔 눈에 띈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아마도 일광욕을 하러 나온 것 같은데 한가로운 녀석들이 부럽기도 하다.
식물이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얻지만, 동물은 누군가의 도움을 얻거나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그러기에 동물은 밥을 먹든 다른 방법을 통하든 의도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원천이다.
필자는 십수 년 동안 아침밥을 챙기고 집안의 설거지를 거의 도맡아 해왔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가족이 살아있으니 내가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꺼이 고맙게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삶을 돌아보며 명상을 하는 것은 그대로 덤이다.
오늘 낮 점심에 모 종교단체에서 매일 하는 무료급식에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한 달에 한 번 내가 속한 모임이 맡아서 하는데 그마저도 가끔씩 빼먹기도 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거기엔 보통 150명에서 200명 남짓의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모여든다.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참 많다. 어쩌면 그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눈앞의 한 끼가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누가 쫓아오는지 허겁지겁 먹는 사람도 있고, 바른 자세로 명상하듯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모습으로 식사를 하든 나는 그 한 끼가 그 사람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봉사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약간은 불만스런, 어눌한, 무례한 이런저런 모습에 나의 감정은 금세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숱한 생각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습관이나 경험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 뿐인데도 내 잣대로 이런저런 판단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다. 나 또한 누군가의 판단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로.
사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밥이 필요해서 거기에 왔을 뿐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음에도 내 마음대로 추측을 하고 제멋대로 평가를 한다. 그러다가 제정신이 들어 나 또한 언젠가 이 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순간 그들은 나처럼 우매하고 편견이 가득 찬 중생을 깨우치려고 여기에 온 나툰 보살이나 부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손을 모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밥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니 오늘은 내가 밥값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 제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만큼 보기 좋은 일은 없다고 했던가.
나 또한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되었다. 밥 한 끼 먹는데 작은 용기를 내어 온 노인들 또한 언젠가 그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고마웠다. 기꺼이 생명을 지켜내는 그 마음이 고맙고, 소찬인데도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마음이 고맙고, 나에게 진정 봉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배움을 주는 게 참 고맙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가 봉사의 최대의 수혜자가 된 날, 기쁜 오늘이었다.
식물이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얻지만, 동물은 누군가의 도움을 얻거나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그러기에 동물은 밥을 먹든 다른 방법을 통하든 의도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원천이다.
필자는 십수 년 동안 아침밥을 챙기고 집안의 설거지를 거의 도맡아 해왔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 가족이 살아있으니 내가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꺼이 고맙게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삶을 돌아보며 명상을 하는 것은 그대로 덤이다.
오늘 낮 점심에 모 종교단체에서 매일 하는 무료급식에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한 달에 한 번 내가 속한 모임이 맡아서 하는데 그마저도 가끔씩 빼먹기도 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거기엔 보통 150명에서 200명 남짓의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모여든다.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참 많다. 어쩌면 그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눈앞의 한 끼가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누가 쫓아오는지 허겁지겁 먹는 사람도 있고, 바른 자세로 명상하듯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모습으로 식사를 하든 나는 그 한 끼가 그 사람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봉사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약간은 불만스런, 어눌한, 무례한 이런저런 모습에 나의 감정은 금세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숱한 생각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습관이나 경험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 뿐인데도 내 잣대로 이런저런 판단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다. 나 또한 누군가의 판단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로.
사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밥이 필요해서 거기에 왔을 뿐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음에도 내 마음대로 추측을 하고 제멋대로 평가를 한다. 그러다가 제정신이 들어 나 또한 언젠가 이 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순간 그들은 나처럼 우매하고 편견이 가득 찬 중생을 깨우치려고 여기에 온 나툰 보살이나 부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손을 모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밥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니 오늘은 내가 밥값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 제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만큼 보기 좋은 일은 없다고 했던가.
나 또한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되었다. 밥 한 끼 먹는데 작은 용기를 내어 온 노인들 또한 언젠가 그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고마웠다. 기꺼이 생명을 지켜내는 그 마음이 고맙고, 소찬인데도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마음이 고맙고, 나에게 진정 봉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배움을 주는 게 참 고맙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가 봉사의 최대의 수혜자가 된 날, 기쁜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