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마음이 답답할 때면

마음이 답답할 때면

by 한희철 목사 2017.02.08

이따금씩 꺼내보는 책 중에 <감자꽃>이 있습니다. 권태응 선생님이 쓴 동시집입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동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감자꽃’이 대표작으로 수록되어 있는 책이지요.
권태응 선생님은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인 1918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서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며 얻은 폐결핵으로 1951년 3월, 그러니까 6.25전란을 겪은 이듬해 세상을 떴으니 내내 어둡고 우울한 시대를 사신 셈입니다. 선생님은 겨우 33년 2개월을 살았는데, 세상을 뜨기 전 6년 동안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며 동시를 썼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선생님의 동시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감자꽃>만큼 우리의 농촌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삶을 담아낸 글도 드물다 여겨집니다. 선생님의 글 속에 농촌의 풍경과 삶이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풍성하게 담겨 있다 싶은 것은, 글 속에서 농촌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 지붕 위에 올라앉아 달구경을 하는 박과 울타리를 타고 매달린 호박, 아기들이 따먹는 빨간 앵두, 실에 꿰어 염주를 만들기도 했던 율무, 눈을 꼭 감고 무섬도 없이 떨어지는 도토리, 젖 한 통 먹고는 콜콜 잠에 빠진 송아지, 잡아뒀다 가물 때 울게 하고 싶은 청개구리, 봄에는 노랑꽃 가을에는 하양꽃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우는 목화, 네 번 잠을 자는 누에, 논에다가 심는 논보리, 이틀 만에 한 번씩 들어오는 전깃불, 먼산나무 소바리에 싣고 오려고 먹는 새벽밥, 한동네서 잔치를 지내 얻은 이름 한말댁, 수숫대 안경 쓰고 소리쳐 뛰어다니던 수숫대 기차놀이…, 기나긴 겨울을 위해 처마 밑 빈틈없이 쟁여놓은 장작들처럼 책 속에는 농촌의 삶과 풍경이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자꽃>에서 빠뜨릴 수 없는 미덕은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입니다. 선생님의 동시 속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아름답게 쓰이고 있습니다.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아침 첫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말 우리글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지요. 아름다운 우리말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아름답게 쓸 줄 안다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감자꽃>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교과서가 됩니다.
책이 가지고 있는 또 한 가지 미덕은 이웃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가난하고 어두운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의 동시 속에는 유달리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가난한 이웃의 삶과 고통받는 역사와 현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감자꽃>은 돌아보게 합니다.
거칠고 어수선한 시절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오히려 <감자꽃>과 같은 동시집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