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낮은 데로 임하소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by 정운 스님 2017.02.07

원고에 진척이 없거나 삶의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마음을 쇄신하기 위한 방법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특별히 물건 살 게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의 풍경을 보기 위함이다.
길바닥에 나물 몇 가지 놓고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할머니, 잠깐의 계절 장사일 듯한 호떡 장사, 중고물품 옷가지를 파는 사람들, 부침개를 직접 해서 팔고 있는 아주머니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삶이 치열한가를 느낀다. 특히 영하 10도 이상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일을 해야 노동자를 볼 때는 짠한 마음이 더하다.
올해 명절 설, 전날에도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설 특수를 누리기 위해 애쓰는 떡 방앗간이나 과일 가게, 생선장사, 정육점을 보면서 필자하고는 인연도 없지만, 그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저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명절 설을 보낸 적이 있다. 중국인들은 설을 중시하며, 민족 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인파가 이동한다. 백화점이나 큰 마트, 공원, 버스터미널, 기차역은 인간 파도를 연상할 정도이다. 물론 고향을 가기 위한 이들도 있지만, 장사를 해야 하고,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하고, 주차 관리를 하는 하층민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설 명절 기간에 집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보내는 이들이 많다. 경찰들, 의료업계의 병원과 약국,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소방관들, 고속버스 기사, 서비스업계 종업원 등등 수많은 이들이 타인들이 즐거워할 시간에 희생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어록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꽃이 필 때 꽃의 아름다움만 보았지 땅의 노고를 알지 못했다.
바람이 불 때 꽃대가 꺾일까 염려만 했지 바람이 꽃을 피운 것을 몰랐다.
뉴욕의 거리에서 화려한 불빛만 보았지 저 아래 깊숙한 곳에 지치고 곤궁한 사람들의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나는 보고 하나는 모르는 나는 절름발이로 살아가고 있다.”
명절이라고 누군가는 편히 쉴 때, 어느 누군가는 추위에 떨며 노동을 하고 땀을 흘린다.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릴 때, 어느 누군가는 내 행복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냥 굴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서로의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서로 얽힌 속에서 서로 도움받고, 도움 주며 살아간다.
자신이 직접 농사지어서 쌀을 생산하지 않고 농부의 힘을 빌리지 않는가? 얼굴 닦는 수건 하나도 자신이 만들어서 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 다른 삶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이 세상은 수많은 존재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남들보다 잘나서 높은 자리에 있다고 자만하지 말라. 낮은 자리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있다. 자! 그러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어떨까?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공존해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인간적인 도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