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현실과 실현 사이

현실과 실현 사이

by 강판권 교수 2017.02.06

사람이 매일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희망이 없는 사회로 폄하하고 있다. ‘헬조선(Hell朝鮮)’은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신조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신조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청년들의 좌절감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정치지도자들은 지옥 같은 한국사회를 구하는 데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공감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은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30대 말 생존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내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상황은 분명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같은 해석은 사회문제를 분석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는 주장이다. 이른바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분석하면 논리정연하게 문제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정연하게 내가 처한 현실을 분석하더라도 당장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나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 꽤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지만, 그러한 고통을 넘어서고서야 문제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현실은 아무리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도 거칠다. 현실의 난관을 이기고 꿈을 실현하는 방법은 ‘현실’과 ‘실현’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직접 현실을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현실의 글자를 뒤집으면 실현의 글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무리 뒤집어도 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진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떠나서 뭔가를 실현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에서 도피하는 순간 그 어떤 것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내가 존경하는 나무는 언제나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서 높은 하늘의 이상을 향한다. 나무는 한순간도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야만 온갖 어려움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 나무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다소나마 분노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세상을 향한 분노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그 어떤 것도 눈치 보지 않고 실천할 때 삶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스스로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자기의 주인으로 살아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 나무가 추운 겨울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듯이, 생존의 힘은 언제나 밖이 아니라 안에서 솟아야 한다. 생존의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깊고 깊은 가슴을 가득 채워 밖으로 넘쳐 나올지라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 않고 살 수 있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상에 살고부터 열심히 살지 않고 생존했던 존재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픔, 걱정, 사랑, 고통, 이별, 그 어느 것 하나 삶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이라 여겨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이 힘든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