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긴 간병에 장사 없다

긴 간병에 장사 없다

by 이규섭 시인 2017.02.03

낙상은 노인들에게 치명적 복병이다. 빙판에 살짝만 넘어져도 고관절 골절 등 심각한 부상으로 고통을 겪는다. 나이 들면 균형 감각과 순발력이 떨어져 약간만 미끄러져도 “꽈당”하고 넘어지기 쉽다. 설 명절을 앞두고 아내가 빙판에서 넘어졌다. 동네 정형외과에 들러 X레이 촬영 결과 골절에 이상은 없다고 하여 안심했다.
절룩거리면서도 무리하게 바깥출입을 하더니 버스에서 내려 곤두박질쳤고, 며칠 뒤엔 화장실에 주저앉았다. 그 뒤 한쪽 허벅지 부근에 간헐적으로 통증이 온다며 경기하듯 깜짝깜짝 놀란다. 무릎연골 수술로 가뜩이나 허약해진 다리라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CT 촬영 결과 골절은 이상 없으나 근육과 심줄 충격으로 통증이 온다는 진단이다.
집에서 샤워를 해도 될 텐데 굳이 목욕탕을 가겠다고 우긴다. 아내를 부축하고 가는데 연신 주저앉을 듯 휘청거려 서로 힘들었다. 목발이라도 사다 줄까 했더니 창피하다며 거절한다. 아내가 적어주는 대로 이것저것 제수용품을 사다 날랐다. 설 전날 제수씨와 며느리가 일찍 와서 음식준비를 하여 설은 그럭저럭 넘겼지만, 낙상 후유증은 오래갈 것 같다. 식사를 거들고 청소를 해주는 게 고작인데도 일상이 흐트러지면서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 아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은 2년 넘게 아내의 병수발을 한다. 일주일에 격일로 세 번 승용차로 병원에 모셔가 투석을 받게 한다. 집으로 돌아와 대기해 있다가 투석이 끝날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가 모셔 온다. 투석 받지 않는 날은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간다. 아내의 간병이 일상이 됐다.
모임이나 취미 활동도 제약을 받는다. 간단하게 술 한잔하려고 해도 병원 가는 요일을 고려해야 한다. 칼 같은 성격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술 취한 어느 날은 아내와 함께 죽고 싶다는 말도 한다. 오죽 힘들면 저럴까 싶어 안타깝고 측은하다. 신경과민과 심한 스트레스로 한 때 얼굴 신경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나 심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퇴직 후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힘든 나이에 가족의 병수발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본다. 긴 병에 효자 없고 긴 간병에 장사 없듯이 간병은 힘들다. 예전엔 가족이 입원하면 병원 침상 곁에 새우잠을 자면서 간병했다. 가족 중심의 간병은 환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중증질환의 경우 환자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경제활동에도 지장이 많다. 긴 간병으로 치료비 부담에 빈곤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의료계에서는 가족 간병이 환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감염 노출로 안전에도 위험이 된다는 지적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간호·간병 통합시스템’이다.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지 않고 일상에 전념하면서 환자의 입원생활을 유지하는 서비스다. 간호사나 간병인이 중심이 되어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2015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되면서 간병료 부담도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해부터 본격 시작된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병원과 가족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