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점점 내려갑니다. 어제도 영하권이었지요. 밤에는 웃풍이 심해 몇 번이나 일어나 보일러 불을 켜고, 창문 단속을 했습니다. 집 마당 배롱나무에 날아와 울다 간 곤줄박이의 밤은 얼마나 고단할까, 그 생각이 듭니다. 붉은 가슴 털을 잔뜩 부풀려서 꽁지 끝을 파르르 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 문득 지난봄, 저수지에서 본 노랑턱멧새가 생각났습니다. 내 마음이 벌써 봄을 기다리는 건가요.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 삼죽 근방에 있는 저수지에 갔습니다. 뚝방에 차를 세우고 저수지 물가 버드나무를 따라난 둑길을 걸었습니다. 둑길은 마른 풀 때문에 물렁물렁한 느낌입니다.
그 물렁물렁한 길을 가며 저수지 얼음을 들여다봅니다. 얼음장 위에 웬 돌멩이가 듬성듬성 놓여있네요. 처음엔 괜히 물 위에 떠 있던 돌멩이를 얼음장이 받쳐 올린 모양이구나, 했지요. 하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겠나요? 나처럼 이 둑길을 지나간 사람들이 돌멩이를 날려 넣은 거겠지요. 돌멩이들이 무뚝뚝하게 앉아 있네요. 지금은 꽝꽝 언 얼음장도 봄이 오고 날이 풀리면 저 돌멩이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해 물 아래로 잠방, 내려놓고 말겠지요.
나는 물가로 내려갔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집어 나도 멀리 던집니다. 얼음장에 떨어진 돌멩이가 주르르 미끄럼을 탑니다. 얼음이 탄탄합니다. 얼음장 위에 올라섰지요. 그러나 더는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가장자리를 따라 발 미끄럼을 탔지요. 그러는 중에 어디선가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은 고즈넉하고 조용합니다. 귀를 기울여 봅니다. 마치 전자음악 같은, 아니 혹등고래 울음소리 같은 노래입니다. 아, 저수지 얼음이 팽창하느라 쪼롱쪼롱 우는 울음소리입니다. 한겨울 저수지가 만들어내는 음악이었던 거지요.
나는 그 음악에 맞추어 발 미끄럼을 타며 안쪽 마을까지 갔다가 돌아섰습니다. 올 때는 버드나무 숲을 따라난 그 물렁물렁한 둑길로 왔습니다. 한참을 걸어오다가 새소리에 귀를 번쩍 떴지요. 버드나무 우듬지에 앉은 새 두 마리가 쪼빗거립니다. 풀잎만 한 박새네요. 두 마리인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내 귀가 새소리에 열려나자, 여기저기에서 새 울음이 들려옵니다.
들어야 들리는 게 내 귀입니다. 닫아놓으면 얼음장의 노랫소리도, 박새 울음도 듣지 못하지요. 내 귀를 탓할 일만도 아니군요. 겨울을 나느라 내 마음의 귀가 닫혔을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듣는 일에 게을러진 게 분명합니다. 세상의 낮은 소리를 듣는 데는 보는 것 이상의 청력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향한 마음의 기울임이거나 쏠림의 에너지가 있어야 듣는 것이 가능한 거지요.
마늘밭쯤까지 걸어와 저수지 얼음장을 내려다봅니다. 얼음장 위에 날아간 저 많은 돌멩이 중에는 내가 던진 돌멩이도 있을 테지요. 나는 거기에 돌멩이를 두고 뚝방에 올라와 차의 시동을 걸었지요. 이 겨울이 다 가고 그 돌멩이가 저수지 물속에 가라앉기 전에 나는 다시 한번 더 와야겠어요. 그때까지 나는 저수지 얼음장이 들려주던 박자가 빠른 노랫소리를 간직하며 추운 겨울을 견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