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불씨를 지킨다는 것은

불씨를 지킨다는 것은

by 한희철 목사 2017.02.01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얼마든지 가스불이 켜지고 전깃불이 들어오는 편리한 이 시대에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예전에는 불씨를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요즘에야 판촉물로도 흔하게 만나는 라이터는 물론 성냥조차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화로 속에 불씨를 담고 그 불씨를 잘 지켜야 다음날 밥을 짓고 방에 불을 지필 수가 있었을 테니까요. 특히 며느리가 불씨를 꺼트리는 일은 몹시도 부끄러운 일로, 게으른 며느리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 중에 ‘데르수 우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러시아군 장교인 아르세니에프가 당시 지도상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던 극동 시베리아 시호테 알린 산맥 지역을 탐사하며 탐사의 결과를 자세하고 남긴 책입니다. 미답의 땅을 탐사하며 만난 대지의 속살이 아름답고도 웅장한 모습으로 담겨 있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인간 본래의 삶이라는 것도 돌아보게 합니다.
오지 탐사가 우리의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일인 데다 탐사 지역 또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곳이 아니어서 무덤덤하게 읽히는 대목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마치 숨은 비경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탐사 지역이 아직 지도에도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은 오지인 데다가 워낙 추운 지역이고 날씨 또한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탐사를 위해서는 각종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야만 했습니다. 꼼꼼하게 준비물을 챙기는 것은 탐사의 성공 여부를 떠나 생존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탐사를 위해 물품을 챙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의외의 물품이었는데, 바로 성냥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탐사에 가장 필요한 물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성냥을 꼽겠다고, 저자는 당연한 듯이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단 한 번의 부주의로 성냥이 몽땅 젖어버리는 일을 숱하게 경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늪지대나 산악지대는 워낙 습도가 높아 성냥을 가죽이나 고무로 싸봤자 소용이 없고, 특히 비가 쏟아지기 직전에는 아무리 신경을 써서 보관한 성냥이라도 불이 붙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성냥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냥과 비슷한 크기의 나무상자에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는 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날씨가 아무리 습해져도 성냥을 항상 건조하게 보관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험한 오지를 탐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물품이 성냥이라는 말이 뜻밖의 말로 다가올수록, 어쩌면 이 시대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대는 달라도 우리에게 여전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온기를 지켜내는 따뜻한 마음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불씨를 지키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소홀할 수가 없는 일이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