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늙기도 서러운데 ‘틀딱’이라니

늙기도 서러운데 ‘틀딱’이라니

by 이규섭 시인 2017.01.31

A:오늘 자원봉사 모임은 청소년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행사라죠?
B:네, 틀딱과 급식충의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생활 속 한마디다. 청소년과 어르신이 자원봉사를 위해 뜻을 함께한다는 아름다운 의미가 아니다. ‘틀딱’과 ‘급식충’의 이질적인 조합의 조롱이 담겼다. ‘틀딱’은 틀니를 딱딱 부딪치며 말하는 노인들을 비하하는 신조어다. ‘급식충’은 학교에서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고 급식만 축내고 오는 청소년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가 갈수록 거칠어진다.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 혐오현상이 확산되면서 모성(母性)까지 비하의 대상이 됐다. 식당이나 카페, 공공시설에서 어린아이를 시끄럽게 하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쳐도 내버려 두면 ‘맘충’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일부 카페에서 어린이를 동반한 엄마는 입장시키지 않는 ‘노 키즈 존’을 만들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를 유치원에 보낸 뒤 브런치를 먹는 엄마를 ‘애유엄브’라고 폄훼하는 파생어도 쥐어박는 말이다.
도매금으로 틀딱들이란 소리 듣는 것도 서러운 나이인데 ‘틀딱충’으로 벌레 취급까지 한다니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틀딱충’으로 혐오하는 것도 모자라 ‘개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 취급당하면 말문이 막힌다.
나이가 벼슬도 아닌 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이든 티를 내면 틀딱소리 듣는다. 우리 사회는 연장자를 우선시하는 경로우대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자 젊은 세대는 어른들을 부담해야 할 ‘사회적인 짐’으로 여기는데 눈치코치 없이 대접을 받으려 하니 시선이 곱지 않다. “어린 것들이∼” “여자가 말이야∼” 시대착오적 막말로 세대 간 갈등을 자초한다.
전철 일반석에 앉은 젊은이 앞에 시위하듯 버티고 서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행위도 몰염치하다. 늦은 밤 불콰한 얼굴로 전철 경로석에 앉아 큰소리로 시국을 논하며 원색적으로 상대편을 비난한다. 공짜로 지하철 타면서 진상 떠는 늙은이로 비치는 건 당연하다. 젊은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호통이나 치는 노인들이 못마땅하다.
세대 간 갈등은 심화되고 연령차별주의 양상으로 흐르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대 간 접점을 찾기 어렵다 보니 대화는 겉돌고 불통이 된다. 요즘은 명절 때나 조부모를 잠시 만날 뿐 노인과 젊은이들이 접촉할 기회조차 드물다. 탄핵 정국을 맞아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이념 대결로 치달으며 불신의 골은 더 깊어졌다. 정가에서는 “선출직 공직자의 연령을 만 65세로 제한하자”고 제안해 세대 간 갈등을 부채질한다. ‘시대착오적 신 고려장 발상’이라는 비판과 헌법상 참정권 제한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젊은 세대가 노인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설이 지났으니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게 나이다.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된다. 노인이 없으면 젊은 세대도 없다. 늙기도 서러운데 틀딱충 취급은 삼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