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세밑에 온 택배

세밑에 온 택배

by 권영상 작가 2017.01.26

설이 다가온다. 아직도 내게 고향이 있다는 게 복이다. 고향을 지키시는 분 중에 손 윗분이라곤 작은형수님뿐이다. 아침에 아내가 고향 대소가에 드릴 선물을 예약하는 걸 보고 나는 헤어숍에 갔다. 젊었을 때라면 명절을 코앞에 두고 이발소엔 안 갔다. 촌스럽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고향 아버지가 그러셨다. 연휴를 얻어 내려가면 아버지는 그제야 하시던 그 많은 일을 놓고 이발소에 가셔선 치켜 깎으신 머리를 하고 돌아오셨다.
명절 전엔 절대 안 간다 했는데 나는 동네 헤어숍에 들어섰다. 붐빈다. 모두 나이 많은 분들이거니 했는데 아니다. 남녀노소 다 모였다. 나도 그들 틈이 끼어 아버지처럼 머리를 치고 나올 때다. 고향 작은형수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방님, 택배에 뭘 좀 부쳤으니 어딜 나가지 말고 받아둬요.”
여든이 가까우신 형수님도 명절을 느끼시는 모양이다. 이때를 맞추어 택배를 보내셨다. 모르기는 해도 설을 앞두면 어른들은 고향을 떠나가 사는 피붙이며 형제가 생각나겠다. 평소엔 사는 일에 치여 남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이때가 되면 그들이 그리운 건 인지상정이다.
어머니 못 해주시던 거를 대신해 주시겠다며 김장김치까지 담가 보내시는 분이 작은형수님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김장까지 하겠냐며 아내의 손길을 덜고 싶어 하신다. 나이가 한없이 어려도 아내가 손아래 동서라고 작은형수님은 아내를 끔찍이 아끼신다.
집에 들어서니 벌써 아내는 형수님께서 보낸 스티로폼 택배 상자를 열고 있다. 그 안에는 형수님께서 지난 한 해 땀 흘리신 모든 것이 들어있다. 절편과 인절미와 만두와 떡국떡과 검정콩, 고구마녹말가루, 흑미에 들기름병과 말린 북어가 나왔다.
“아니, 이 많은 걸 대체 뭔 힘으로 보내셨대!”
아내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으며 안절부절못했다.
택배 한 상자를 채우는데 얼마나 많은 양이 들어가는지 나는 안다. 깊은 마음 씀씀이 없이는 그 안을 채우기 어렵다. 꺼내어 벌여놓은 그 많은 물건들을 보면 안다.
작은형님이 떠나신 지 벌써 5년도 더 된다. 이제 밭일 논일을 놓고 사셔도 누구 탓할 사람 하나 없다. 그만큼 생애를 오직 일에 바치셨고, 자식들 키우는 데 바치셨다. 그런데 이 마당에 또 하나 나이 먹은 시동생까지 챙기시겠다니 작은형수님의 깊으신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아내가 형수님께서 보내신 것들을 거실에 벌여놓고 오래 수화기를 들었다. 눈물을 닦으며 돌아온 아내가 한숨을 쉰다.
“형님께서 이 행복을 오래 누리게 해달라시네.”
작은형수님께선 전에도 이 택배 보내시는 일을 행복이라 하셨다. 여기 쭉 별여놓은 검은 콩이며 흑미며 절편이며 들기름은 모두 작은형수님이 만드신 행복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형수님의 깨끗한 행복을 한 상자 받은 셈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이 드신 형수님께서 보내신 이 고단한 택배를 보고도 오히려 흐뭇하다. 아유, 이 은혜를 뭘로 갚아드리지! 그런 비명을 지르면서도 오히려 입가엔 기쁨이 감돈다.
어린 소년처럼 설이 기다려진다. 들뜨기 잘하는 내 마음이 성급해진다. 올 설엔 형수님을 모시고 어디 구들이 뜨끈한 음식점에 들러 수제비 한 그릇을 대접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