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할머니와 손녀

할머니와 손녀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01.19

평소 친하게 지내던 30대 초반의 지인이 있다. 얼마 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왔다. 장례식장이 지방이어서 마음의 조의를 표한 게 전부였지만 그녀의 할머니 사랑이 지극한 것에 적잖이 놀랐다.
3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일상사였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엔 할머니와 손녀, 손자들 사이에 살가운 소통이 흔치 않기에 더욱 그랬다. 단지 할머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교감이 컸을 것이다. 할머니를 떠나 보내는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이 더 훈훈해졌다.
나와 할머니는 부모라는 다리를 통해 이어진 관계이다. 그러기에 부모가 자신의 부모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따라 손자, 손녀들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할머니는 당신의 자식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만 보아도 그저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이다. 그 누가 몸부림치며 아니라 해도 사랑은 내리사랑이기에 그렇다.
지난 주말 어머니 생신으로 고향집에 딸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당신의 분신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맞아주는 할머니를 손녀 또한 같은 마음으로 안았다.
지금은 민들레 홀씨처럼 다 날려버렸지만 시어머니의 지독한 편애에 마음 앓이를 했던 할머니는 자식들은 물론 손녀, 손자 누구든 사랑을 고루 나누어주려고 애를 쓴다. 좀 더 마음이 가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없을리 없음에도.
부모의 이야기는 대부분 잔소리로 들린다고 했던가. 그래서 한 걸음 더 떨어져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손녀에게는 부모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들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는 손녀에게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세상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줄 것이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이처럼 따뜻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은 물론 그사이의 부모에게도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큰 사랑을 나누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도 사랑을 나누는 것에 인색한 ‘어른이’들도 많은 세상이라 그 큰 사랑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할머니가 주는 사랑이 100이라면 손녀가 드릴 수 있는 사랑은 10만 되어도 충분하다. 할머니는 그 손녀의 사랑을 10이 아닌 100 아니 1000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할머니이고 큰 사랑의 존재인 진짜 어른이다.
아직 할아버지가 되지 못한 내가 느끼기엔 벅찬 것이지만. 어머니, 아니 딸아이의 할머니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배운다. 배운 그 사랑을 가까운 날, 딸아이의 아이들,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 베풀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끝없이 이어지고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무엇이기에.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리라.
가난했지만 자식들의 우애와 화목함, 건강을 잘 누려온 어머니(아버지)는 그 지난한 삶에 대한 보너스가 어쩌면 손녀(손자)일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사랑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언제 지구별을 떠날지 알 수가 없다. 이제 할머니가 80대 중반을 지났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할머니는 이야기했다. 올여름 대학을 졸업하는 딸아이의 졸업식에 꼭 가겠다고. 80년대 중반 자식의 졸업식에 중년의 아낙으로 함께 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행복을 맛볼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과는 ‘조금’ 다르게 부모는 물론 할머니(할아버지)와 살갑게 지내는 딸아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고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따뜻한 통화를 나누는 딸아이가 참 예쁘다.
얼마나 보기 좋은 모습인가. 이게 진짜 세상이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