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
따뜻한 사람
by 김민정 박사 2017.01.16
사발은
제 스스로 따뜻할 순 없으나
모진 비바람 이겨낸 밥알을 품고 나면
막노동
주린 뱃속도
훈훈하게 뎁힌다
- 이승현, 「밥그릇」
삶에서 무엇을 품는다는 것은 무척 소중한 것 같다. 이 시에서처럼 사발은 스스로는 차디찬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그 그릇에 따뜻한 밥알을 품으면 밥그릇이 되고, 따뜻한 국을 품으면 국그릇이 되고, 시원한 냉수를 품으면 시원한 한 사발의 냉수 그릇이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도 하나의 그릇으로 세상을, 이웃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알을 담은 밥그릇으로, 따뜻한 국을 담은 국그릇으로, 또 갈증 나는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냉수 그릇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조금은 가치 있다 느껴지지 않을까?
그 밥그릇에 담기는 밥알도 얼마나 많은 모진 비바람을 거쳐 왔으며,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서 거기에 담기었을까? 수많은 자연과 사람의 손을 거쳐 비로소 그 그릇을 채우게 되고 누군가의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막노동을 하는 이들의 주린 뱃속에서도 비로소 훈훈하게 뎁히는 따뜻한 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에, 모든 사물에 무한 감사를 표명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쌀 한 톨에 깃든 햇볕과 바람과 비바람의 무게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의 사발을 연상하며 상선약수의 모습도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까? 사발의 모습이 상선약수의 모습으로도 상상이 되니 말이다. 물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겸손하며 천지만물을 키우지만 절대 자랑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물은 생긴 그릇에 따라 세모 그릇에 들어가면 세모가 되고, 네모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모습으로 담긴다. 골짜기를 흐르면 계곡물이 되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되고,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가는 유연함을 볼 수 있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간다. 한없이 약하게 보이는 낙숫물은 바위를 뚫는 강함을 보이기도 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 마침내 커다란 바다를 만든다. 물은 스스로 바다를 만들기 위해 흐르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바다에 닿아, 더 큰 자아를 만든다.
상선약수처럼 지혜롭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조금은 남을 생각하며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산이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따뜻한 밥그릇으로, 국그릇으로, 물그릇으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면 훨씬 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올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따뜻함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안도현의 시를 다시 읽으며,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부분
제 스스로 따뜻할 순 없으나
모진 비바람 이겨낸 밥알을 품고 나면
막노동
주린 뱃속도
훈훈하게 뎁힌다
- 이승현, 「밥그릇」
삶에서 무엇을 품는다는 것은 무척 소중한 것 같다. 이 시에서처럼 사발은 스스로는 차디찬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그 그릇에 따뜻한 밥알을 품으면 밥그릇이 되고, 따뜻한 국을 품으면 국그릇이 되고, 시원한 냉수를 품으면 시원한 한 사발의 냉수 그릇이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도 하나의 그릇으로 세상을, 이웃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알을 담은 밥그릇으로, 따뜻한 국을 담은 국그릇으로, 또 갈증 나는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냉수 그릇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며 살 때 우리의 삶은 조금은 가치 있다 느껴지지 않을까?
그 밥그릇에 담기는 밥알도 얼마나 많은 모진 비바람을 거쳐 왔으며,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서 거기에 담기었을까? 수많은 자연과 사람의 손을 거쳐 비로소 그 그릇을 채우게 되고 누군가의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막노동을 하는 이들의 주린 뱃속에서도 비로소 훈훈하게 뎁히는 따뜻한 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에, 모든 사물에 무한 감사를 표명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쌀 한 톨에 깃든 햇볕과 바람과 비바람의 무게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의 사발을 연상하며 상선약수의 모습도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까? 사발의 모습이 상선약수의 모습으로도 상상이 되니 말이다. 물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겸손하며 천지만물을 키우지만 절대 자랑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물은 생긴 그릇에 따라 세모 그릇에 들어가면 세모가 되고, 네모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모습으로 담긴다. 골짜기를 흐르면 계곡물이 되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되고,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가는 유연함을 볼 수 있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간다. 한없이 약하게 보이는 낙숫물은 바위를 뚫는 강함을 보이기도 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 마침내 커다란 바다를 만든다. 물은 스스로 바다를 만들기 위해 흐르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바다에 닿아, 더 큰 자아를 만든다.
상선약수처럼 지혜롭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조금은 남을 생각하며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산이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따뜻한 밥그릇으로, 국그릇으로, 물그릇으로, 남에게 조금이라도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면 훨씬 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올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따뜻함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안도현의 시를 다시 읽으며,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