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미덕
공존의 미덕
by 이규섭 시인 2017.01.13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애인’-유수연>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년호를 사려고 전철역 매점까지 갔다. 동네 편의점은 이문이 박하고 잘 팔리지도 않으며 관리가 귀찮아 신문판매대를 없앴다고 한다.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잉크 냄새 풍기는 활자로 읽는 게 공감의 폭이 넓어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의 월계관을 쓴 시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정신희의 ‘가족’(서울신문)은 ‘착상과 비유의 과정이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게 심사평이다. 제목이 눈길을 끄는 윤지양의 ‘전원 미풍 약풍 강풍’(한국일보)은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무심하고 당돌한 스타일로 감각과 정서를 끌어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창윤의 ‘목판화’(문화일보)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 시적 형성력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을 관심을 끌어당겼다. 이다희의 ‘백색소음’(경향신문)은 ‘나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다’는 평을 들었다. 김기형의 ‘손의 에세이’(동아일보)는 ‘손을 매개로 한 전개와 시적 사유의 확장이 돋보여’ 영예를 거머쥐었다.
세대 차이와 감성이 무디어진 탓인가.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겉도는 것 같아 불편하다. 시적 사유가 장황하고 언어의 유희가 느껴져 소통이 안 된다. 소통이 막히니 울림이 없다.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는 유수연의 ‘애인’은 첫 문장부터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는 ‘다름’이 판친다. 이념과 세대, 촛불과 태극기, 금수저와 흙수저,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언론의 팩트 없는 ‘의혹과 혐의’로 갈등과 혼란을 부추긴다.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하듯’ 이 땅에 발 딛고 살면서도 생각은 다르다. ‘다름’이 ‘다툼’으로 확장되어 날을 세운다.
개그콘서트 ‘빼박캔트’ 코너의 애인처럼 남자는 여자의 속마음을 몰라 쩔쩔맨다. 비위를 맞추려 하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제 살길 챙기기에 바빠 공존의 미덕은 뒷전이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며 나의 삶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더불어 사는지 자문해 본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년호를 사려고 전철역 매점까지 갔다. 동네 편의점은 이문이 박하고 잘 팔리지도 않으며 관리가 귀찮아 신문판매대를 없앴다고 한다.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잉크 냄새 풍기는 활자로 읽는 게 공감의 폭이 넓어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의 월계관을 쓴 시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정신희의 ‘가족’(서울신문)은 ‘착상과 비유의 과정이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게 심사평이다. 제목이 눈길을 끄는 윤지양의 ‘전원 미풍 약풍 강풍’(한국일보)은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무심하고 당돌한 스타일로 감각과 정서를 끌어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창윤의 ‘목판화’(문화일보)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 시적 형성력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이 심사위원을 관심을 끌어당겼다. 이다희의 ‘백색소음’(경향신문)은 ‘나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다’는 평을 들었다. 김기형의 ‘손의 에세이’(동아일보)는 ‘손을 매개로 한 전개와 시적 사유의 확장이 돋보여’ 영예를 거머쥐었다.
세대 차이와 감성이 무디어진 탓인가.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겉도는 것 같아 불편하다. 시적 사유가 장황하고 언어의 유희가 느껴져 소통이 안 된다. 소통이 막히니 울림이 없다.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는 유수연의 ‘애인’은 첫 문장부터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는 ‘다름’이 판친다. 이념과 세대, 촛불과 태극기, 금수저와 흙수저,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언론의 팩트 없는 ‘의혹과 혐의’로 갈등과 혼란을 부추긴다.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하듯’ 이 땅에 발 딛고 살면서도 생각은 다르다. ‘다름’이 ‘다툼’으로 확장되어 날을 세운다.
개그콘서트 ‘빼박캔트’ 코너의 애인처럼 남자는 여자의 속마음을 몰라 쩔쩔맨다. 비위를 맞추려 하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제 살길 챙기기에 바빠 공존의 미덕은 뒷전이다.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며 나의 삶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더불어 사는지 자문해 본다.